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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실의 공포

웃음관리자 2006. 6. 9. 20:31

이 저작물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 제목 : 처치실의 공포 >

 

 제 고향은 전라남도 무안이라는 곳으로, 그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요.
저는 어린시절 거기서 쭉 자라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어린시절의 순진하기만 해서 우스웠던 추억을

들춰 보고자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니까 꽤 오래된 추억이랍니다. 

그 당시, 저는 귀가 잘 안들리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큰 소리는

잘 알아 듣는데 작은 소리는 잘 알아듣지를 못해서 남의 말을 들을때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못 알아듣거나,  잘못 알아들어서 실수를 할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심부름을 시키실때도 몇 번이나 되묻거나

눈치로 대충 알아서 행동하다보니 실수도 여러 번 저질렀지요.

상태가 심각해지자 아버지께서는 저를 병원에 데려가게 되었지요.

병원이라고 하면 큰 수술을 하거나 심하게 다친 사람만을 치료해 주는

곳으로만 알고 있던 제가 그때 난생처음으로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병원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죠. 그 병원은 목포에 있는 이비인후과였는데,

그때 그 시절만 해도 이비인후과가 무슨 치료하는 곳인지 아는 이가

드물 때였죠.
" 이 증세는요, 병이 아니고요, 귓속에 이물질이 많이 쌓여서 소리가

잘 안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귓청소만 깨끗이 하면 괜찮겠네요."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안도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귓청소를 한다며 귓속에 무슨 액체를 주입하고서는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기계로 귓속을 마구 후비는 것이, 꼭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쉥- 엥-. "
드디어 고통으로 범벅이 된 악몽같은 시간이 무사히 흘러 치료가 끝났고,

'뻥' 뚫린 제 귀에는 개미가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시원했답니다.

그리고 귓속에 무슨 치료제를 넣어 주고 나서, 주사를 맞고 가라시더군요
아 ! 주사 한 방!
바로 주사라는 것이 제 엉덩이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게 아닙니까?
도망을 칠 수도 없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울상이 되어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심심하기도 하고 병원내부가 신기하기도 하여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죠. 
여러분들도 병원에 가보셨겠지만 병원에는 진찰실도 있고, 입원실,

수술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눈에 [처치실]이라고 쓰인 문이 보이는 겁니다.
'처치실은 뭘 처치하는 곳일까...? 만화를 보면 악당을 죽일때 처치한다는 말을 쓰는데......

그렇다면 처치실은 사람을 처치하는 곳이라는 말인......
영리한 제 머리는 황당한 결론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전, 처치실이라는 곳은 아마도 치료를 하는 도중에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를 처치하는 곳이거나, 아니면 의사가

큰 실수를 하였을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증거를 없애기 위해 환자를

처치하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저는 가슴이 얼어 붙을 정도의 공포감을

느꼈답니다.
' 이거 내가 여기서 처치되는게 아닐까...? 나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지! 아까 치료할때 무리하게 기계를 작동시켜서 내 고막이 다쳤는지도

몰라..., 다시는 소리를 못 듣게 될런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다면 .... 혹시 의사가 날 처치실로 데려갈지도 모르는일 아닌가...?'

사실 치료후에 귀가 아주 잘 들린다 싶더니 갑자기 도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건 탈지면으로 제 귀를 막아 두었기 때문이었으나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봉지를 건네

주시면서 내일 또 오라고 하셨고,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 나는 내일 처치될지도 몰라..., 오늘 진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을지도 몰라.

내일도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나를 처치할지도 몰라.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나...

의사가 상태를 물으면 무조건 좋다고 말해야지... '

 다음날 아버지께서는 저 혼자서 병원에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같이 가자 해도 바쁘시다며 혼자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불안에 떨며 간신히 병원까지 가긴 갔지만은 자꾸만 발이

뒷걸음질을 치려 하는 겁니다.

그러다 전 우연히 처치실 문이 약간 열려 있는것을 발견하고 그 안을

살짝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낡은 침대

하나와 휴지통에는 피묻은 탈지면이 가득 했고, 버려진 주사기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상한 기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사람을

처치할때 사용하는 무기쯤으로 여겨졌습니다.
저의 비상한 추리는 앞으로 다가 올 극한 상황을 환히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었거든요.
행여 남에게 들킬까 봐 얼른 문을 닫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의사 선생님께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 귀를 들여다 보시더니 다시 기계를 가지고

치료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많이 아팠지만, 이까짓 고통쯤이야 처치실에 끌려가지 않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생각되어서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악몽같은 시간이 지나고 제 귀는 마치 확성기를 달아 놓은 것처럼

아주 잘 들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소리가 잘 들리게 되었다는 사실도 물론 기뻤지만도 더욱

기쁜 일은 제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치료를 다 했으니 집에 가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마치 지옥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저를 다시 되돌리는 염라대왕의 구원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전 뒤도 안 돌아보고 잽싸게 병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병원을 나와서도 혹시 또 부르지 않을까

싶어 부리나케 버스에 올라탔답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저는 처치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에 갈 일을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 했답니다.  음식도 골고루 먹고

적당한 운동도 하고...

다행히도 그 후론 병원에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치실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동아리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여름방학 특강으로 '응급처치'

라는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응급처치라는 말에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응급처치의 '처치'라는 말에 어릴 적 처치실에 대한 공포가 생각나서,  '응급처치'란 교통사고나 심하게 다친 환자들을 고통 없이 삶을

마감시켜 주는 안락사라는 개념으로 제멋대로 상상을 했답니다.

그러나 교육을 받으면서 처치란 치료의 한 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속으로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아하 !. 처치란 죽이는 것이 아니고 치료를 해준다라는 뜻이었구나.
하하 ! 히히 ! 낄낄 ! ...."
이 얼마나 우매한 한 인간의 왜곡된 판단입니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답니다.

또한 불현듯 옛 성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 

여러분 처치실은 사람을 처치하는(죽이는)곳이 아니고 치료를 해 주는

곳이랍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도 저 처럼 황당한 상상을 하게 될 지

모르지 않습니까?

제대로 알려주세요.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끔요.

 

 

- 이 작품은 MBC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 방송된 작품이며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라는 제목의 책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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