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등대
자전거와 배구 네트 본문
어린 시절 자전거는 대단히 귀한 물건이었다.
시골에 살았던 우리집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나의 놀이터는 당연히 학교 운동장이
되곤했다. 당시 아버지는 장에 물건을 팔러 다니셨기 때문에 그 귀하디 귀한 자전거를 소유하고 계셨다.
요즘에 보기 힘든 그 자전거의 제원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짐을 전용으로 싣게 하기 위해서 뒷바퀴 윗부분에 꽤 넓은 짐실이가 장착되어 있었고,
자전거를 안전하게 세워 놓을 수 있는 받침대가 뒷바퀴 뒤에 있어서 자전거를 세워두려면 받침대를 발로 밟으면서
자전거를 뒤로 밀면 뒷바퀴가 땅에서 10센티미터 정도 뜨게하는 장치이며, 평소에는 뒷바퀴 부분에 스프링의 장력에 의해 위로 올라 붙어 있다가 세우고자 할 때 발로 밟아 작동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 헤드라이트와 헤드라이트 전용 발전기가 달려 있어서 밤에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닐 수 있었다.
자전거 뼈대도 무거운 짐을 지탱하게 하기 위해서 2중으로 보강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무게는 꽤 무거웠다.
그러한 연유로 인하여 자전거를 타보고 싶어도 힘이 모자라서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서야 겨우 자전거를 혼자서
끌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를 배우는 기초는 우선 안전하게 끌고 다니는 단계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을 때 언덕길에서 페달에 두발을 올리고 타 보는 연습을 하였다.
유난히도 다리가 짧았던 나에게는 자전거 안장은 너무 높아 보였다. 그래서 안장에는 앉지 못하지만 두 페달을
밟고 타는 방법을 이용하여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그 자전거 타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요즘말로 모양 빠지는 폼이었다.
자전거 옆에 바짝 붙어서 왼쪽 발은 왼쪽 페달을 밟고 무릎을 굽혀야 했고, 오른 쪽 발은 오른쪽 페달을 밟아야 했기
때문에 무릎을 펴야 했으며,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자전거가 바깥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누가 봐도 볼 품없는 형상이었다.
점차 자전거와 나와 한 몸처럼 익숙해져 갈 즈음 아버지께서 자전거 뒤에서 붙잡아 줄테니 안장에 올라 타서 제대로
자전거를 타보라고 하셨다.
처음엔 망설이다가 이내 용기를 내어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단단히 붙잡고 계시라고 누누히 다짐을 받은 다음 처음으로 안장에 올라 앉아 페달을 밟아 보았다.
다리가 약간 짧아 두 페달을 번갈아 밟을라치면 엉덩이를 좌우로 들썩여야만 했다.
때문에 자전거도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서 균형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자전거를 타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자전거가 멈추어 있을 때는 균형잡기가 힘들지만, 속도를 붙여 달리게 되면
균형잡기가 쉬워진다.
뒤에서 아버지가 붙잡아 주고 계시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에 자꾸 제대로 붙잡고 계시는지 확인을 하게 된다.
끝까지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신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받아내고선 힘차게 페달을 밟아 보았다.
비틀거리면서도 제법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는 거였다. 신이 났다. 오랜만에 안장에 앉아 제대로 자전거를 타보는
마음은 구름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10여미터를 가다가 갑자기 자전거가 넘어졌다.
다리가 짧은 나는 자전거가 넘어질 때 발로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다.
아버지께서 뒤에서 붙잡고 계신 줄 알았는데 왜 넘어졌을까? 생각하는 순간,
아버지는 저 멀리서 웃고 서 계시는게 아닌가!
아버지께서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뒤에서 붙잡고 계신다고 말씀하시고는 적당한 시기에 슬며시 손을 놓은 것이었다.
그 덕분에 혼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서 해냈다는 자부심과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된 나는 더욱 더 열심히 자전거 타는 연습에 매진하게
되었고 몇 번의 넘어짐과 재 도전의 결과 드디어 자전거를 혼자서도 탈 수 있게 되었다.
즉 자전거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말타면 경마하고 싶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전거를 제법 익숙하게 타다 보니 넓은 운동장에서만
타는 것이 싫증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운동장 가에는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 쉼터도 있었고, 축구 골대
그리고 배구장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요리조리 장애물을 피해 다니는 것이 무작정 타는 것보다 스릴이 있고 더 재미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축구 골대에도 골인해 보고(시골 초등학교 골대엔 그물이 쳐 있지 않았었다),
큰 나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운동장 한편에 있는 배구장 네트밑을 자전거를 타고 통과해 보고 싶은 욕망이었다.
멀리서 언뜻 헤아려보니 자전거를 타고도 고개만 조금 숙인다면 네트밑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고개를 숙이는 타이밍인 것이다. 네트 앞에서 재빨리 고개만 숙여 준다면 무사통과 할 수 있겠다고
판단을 한 나는 서서히 목표물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치명적인 오류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평소에 네트밑에 내가 서 있을 때 두 팔을 위로 쭉뻗어 올려야만 간신히 네트 밑에 닿을 수 있었기 상당한
높이라고 생각한 것과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배구 네트의 정확한 위치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어쨌든 자전거는 목표물에 접근 했으며 나는 더 이상 판단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타이밍에 맞춰 잘 엎드리면 통과할 수 있겠지 싶었다.
눈 앞에 나타난 배구 네트의 그물망이 커다랗게 느껴지는 순간, 재빨리 엎드렸다.
하지만 순간 내 몸은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었고, 내 몸을 떠난 자전거만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배구 네트였기 망정이지 크게 다칠 뻔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네트에 걸렸고 자전거만 무사 통과한 셈이었다.
나중에 현장검증을 해 보니, 자전거 안장에 올라 탔기 때문에 네트밑을 통과하기란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다.
그 사건은 나의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는데, 어른이 된 후 몇년 전에 트럭에 물건을 싣고 가다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어린 기억이 떠 올랐다.
제법 높이가 있는 적재물을 뒤에 싣고 트럭운행을 하던 나는 작은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다.
터널 통과 높이와 적재물의 높이를 얼추 계산해 보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에 차 들도 따라 오고 있어서
교통체증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 그대로 통과를 시도했다. 그러나 터널 통과는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적재물중에서 조금 튀어 나온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에 걸려서 그만 튀어나온 부분이 부서져서 낭패를 본 일이 있다.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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