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등대

최면이란? - 퍼옴 본문

☆ 자료 곳간 ☆/교양 정보

최면이란? - 퍼옴

웃음관리자 2006. 11. 30. 22:12
 
당신도 알고 있는 최면
「최면」 이란 과연 무엇일까? 최면의 정의를 내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조차 「최면은 이것이다.」라고 확신하여 하나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변화된 의식 상태」, 「고도의 집중상태」,「피 암시성이 높아진 상태」, 「트랜스 상태 등과 같은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다. 누구나 여러 번 최면을 경험했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인데 아마 당신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언가에 푹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TV 드라마나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에 푹 빠진 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찌개가 넘쳐흐르는 것을 미처 몰랐다거나, 재미있는 책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일에 열중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팔려 엄마가 들어와 있는 것도 몰랐다, 등의 일들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최면 상태로 접어들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어떠한 생각이나 하나의 대상, 감각적인 자극에 몰입되면 지각에 이상이나 변동을 일으키는「변화된 의식 상태」가 된다. 이때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미처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런 현상을 「자연 최면」이라고 말하며 의도적으로 유도되는 최면과는 구분되지만 그 본질은 같은 것이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들어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깨어나는 자연 최면 상태에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유도되는 최면에서처럼 최면 상태를 유지해서 잠재의식에 유용한 암시를 주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등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독특한 의식 상태로 이끌기 위해 갖가지 유도 암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것을 「최면」 또는, 「최면 유도법」 이라고 한다.

고도의 집중 상태
최면 상태란 어떤 대상에 주의를 강하게 집중시키면 의식이 협착되고 잠재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잡고 달릴 때, 속도의 개념이 없이 무심한 상태에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차 안에서 신문?잡지에 몰두한 채 순식간에 도착지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정신이 하나의 자극 대상에만 고도로 집중된 상태가 바로 최면 상태이다. 즉 우리의 의식을 10이라고 한다면 9개의 의식은 잠들고 1개의 의식만이 깨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의식이 깨어 있어 최면자의 음성이 모두 들리고 현실감각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지만 의식 수준이 낮아져서 무비판적이고 주의가 암시에만 극단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이다.

트랜스 상태
최면 상태에서는 긴장이 풀려 마음이 평온해지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고, 몽롱해지며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에서는 근심. 걱정, 불안이 모두 사라지고 정신도 신체도 무통 상태無痛가 되며 굉장히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최면의 심도가 깊어졌을 경우에는 기분이 매우 황홀해지고 몸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또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부유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상태를 최면성 트랜스Hypnotic trance라고 한다. 피최면자는 이 상태가 너무 좋아서 계속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최면에서 깨어난다는 암시를 받으면 깨어나지 않으려고 저항을 보이는 피최면자를 볼 수 있다.

피암시성이 높아진 상태
어떤 하나의 대상에 극단적으로 몰입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의식이 협착되어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좌뇌의 활동은 줄어들고, 직관적이고 감상적인 우뇌의 기능이 활성화되며 의식과 잠재의식으로의 통로가 열려 잠재의식이 도출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피암시성이 대단히 높아져서 오감을 통한 현실의 인식능력이나 초감각적 지각, 운동감각, 기억, 감정 등이 피험자에 따라 각성 시와는 다른 아주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최면 상태에서 적절한 암시를 줄 때 목표하는 바를 성취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또한,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는 비 활성화된 잠재능력을 일깨워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거나 무의식 분석을 통한 심리 진단 및 여러 방면으로의 활용이 가능해진다.


 
최면에 대한 오해
흔히 「최면」하면 사람을 잠들게 해서 의식을 잃게 한 다음 마음대로 조종한다거나 마술魔術이나 마법魔法과도 같은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최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비스러운 모습만 보아 왔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편견임을 밝혀 둔다.
최면이 이렇게 신비한 초능력 같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받아 온 데는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약 3000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 쓰인 「에베르스 파피루스」라는 의학서에는「잠자는 사원」이라는 신성한 장소에서 주술사, 샤먼, 치유사, 신관, 종교 지도자들이 주문을 외면 순식간에 병이 낫게 된다는 초현실적인 설명이 되어 있다. 이 「잠자는 사원」은 현대적으로 볼 때 최면요법의 진료소와 같은 것인데, 최면요법과는 명확하게 다른 점 이하나 있다. 그것은 시술자인 그들이 최면에 대해서 올바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최면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신이 환자의 몸으로 들어가 기적을 일으키는 현상」 으로 민중에게 설명했다. 결국 사람들은 최면의 과학성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신들린 힘으로 납득해 시술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최면을 이렇게 오해하는 데는 「최면술」이라는 용어 탓이기도 한데, 그것은 「Hypnosis;최면」라는 단어를 누군가 「최면술」이라고 번역한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본래「술;術」이란 뜻은「꾀 술」로써 마술, 요술과 같이 꾀를 부려 사람의 눈을 속이는 기술로 혼동해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어 사용에 있어 「최면술」이라는 말은「최면」또는「최면 유도법」으로 바꾸고, 「최면을 건다.」 라는 말은 마치 요술(妖術)에 걸리는 것 같은 관념을 불러일으키기 쉬우므로 「최면으로 유도한다.」 라는 말로, 「최면에 걸린다.」는 「최면(상태)으로 들어간다.」 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최면은 과학이다
최면(催眠 : hypnosis)에 관심을 두는 자기 자신을 지식인답지 않다고 생각 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면이 비과학적인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면의 과학성을 깨닫고 나면 최면은 신비적, 초능력,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초능력(extrasensory perception;ESP)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낸다. 그러나 최면은 그런 특수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과학의 한 분야인 심리학의 영역에서 연구되어 왔으며 이미 정신의학의 견지(見地)에서 카운슬링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신경증의 치료에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 최면을 영력(靈力) 같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오해이며 누구나 과학적, 체계적 방법만 익히면 자신의 문제 해결은 물론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지니게 된다. 영국(1955)이나 미국(1958)의 의학 협회에서는 노이로제, 심신증(心身症), 심인성 질환, 기타 일반 내과, 외과, 산부인과, 치과 등의 치료에 최면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의학 및 치의학 전공생들이 최면 교육을 받도록 하는 정책을 두기도 하였다. 이렇게 최면은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세계 유명 대학에서 교과목으로 교수(敎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놀랄 만한 가치가 인정되어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는 치료의 유용한 수단으로 공인하고 있다. 또 미국의 하버드 대학 내에는 최면 전문 클리닉 센터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최면은 교육이나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성격 개선은 물론 각종 습벽 교정 등 행동요법으로써도 대단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 그 밖에도 기억력 증진, 창의력 계발, 심신의 건강 증진, 범죄 수사 등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면은 마법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인간 정신 내부에 작용하여 잠들어 있는 잠재의식을 일깨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자 과학이다.

잠재의식을 조절하는 테크닉
우리는 종종 무의식중에 콧노래를 부르거나,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누른다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한쪽 다리를 떠는 행동 등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행위가 일어났음을 말한다. 또 다리를 떠는 행동은 주변 사람이 지적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다시 다리를 떠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의식이 존재 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무의식적인 행동은 의식으로 컨트롤(control)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라는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면은 바로 이 무의식(잠재의식)에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나 행동 패턴을 교정할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의식인 일반 의식 상태에서는 잠재의식과의 교류가 어려우나 최면의 기법을 통해서 잠재의식을 조절하여 부정적인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습벽이나 공포,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의 패턴으로 재편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면은 어떻게 하나?
최면 상태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옆자리 커플의 팝콘 먹는 소리도 안 들리고 정신없이 영화 내용에 몰입된다. 마음의 한 부분(무의식)은 영화 속에 들어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다른 한 부분(표면 의식)은 자신이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가 끝난 후에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영화 속에 남는 사람이 없듯 최면 상태도 마찬가지다. 최면 상태에서는 이완과 집중도 상태에 따라 표면 의식 운동이 제한되어 거의 수면 시와 같이 편안한 이완 상태를 경험하는가 하면 오히려 각성 시보다 더욱 고도로 일정 부분의 의식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상태, 또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는 경우 등 다양한 의식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최면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각이나 청각, 관념 운동법(ideomotor Action)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주로 어떤 물체의 심상(心想), 관념(觀念) 혹은 단조롭게 반복되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최면을 유도하는 수단은 바로 암시 이다. 또, 유도 암시(暗示)는 주로 언어가 사용되며 명상 음악 등이 보조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최면은 안전한가?
최면 중에는 의지력을 잃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최면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통제력을 잃고 최면자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면 중에 일어난 일들을 깨어난 후에는 전혀 기억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자신이 숨기고 싶은 사적인 비밀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면은 피최면자의 협조 없이 유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깊은 최면 상태로 들어간다 해도 일부 의식이 깨어 있어 최면자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며 깨어난 후에는 최면 중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최면자가 피최면자에게 부도덕한 위험한 암시를 주게 되면 암시를 거부하고 깨워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의지만 있으면 깨어날 수도 있다.

최면이 안 되는 사람도 있나 ?
최면 감수성(피암시성)은 개인에 따라 높고 낮은 차이가 있어 최면이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최면 감수성은 민감, 보통, 둔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감수성이 낮은 사람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하면 대부분 최면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들의 암시 감수성은 매스컴의 보도를 믿고, 광고를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등의 일상 행동으로도 잘 표현되고 있듯이 보통 인간이면 다소라도 암시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계별 최면 현상
최면 중에서는 과연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개인 최면 감수성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최면의 심도에 따라서도 다르다. 최면 상태에서의 특이한 변화라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급속 안구 운동, 최면자에게 협력하려는 의존적 신뢰 관계인 라포(rapport)형성, 신체의 극단적 경직이나 깊은 이완(弛緩) 현상인 카타랩시(catalepsy), 감정 표현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서적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피최면자는 언제든 말을 한다든지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며 스스로 눈을 뜰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는 실제로는 최면 상태에 들어가 있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최면자가 최면 유도 전에 피최면자에게 「최면에 들어가도 의식을 잃는 일은 없다.」 라고 설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최면에 들어가면 의식이 사라져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한 손이 마비된다.」든지 「한쪽 팔이 무거워 들어 올릴 수 없다.」라는 암시를 주어 피최면자가 그것을 느끼게 될 때에야 비로소 믿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단계에서는 암시에 의해 신체의 반응을 지배할 수 있는데 이를 「운동 지배 단계」라고 한다. 중간 정도의 최면에서는 온몸이 나른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무통 상태가 된다. 이 단계에서는 양파를 사과라고 암시한 후 먹게 하면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미각 뿐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 시각 등 모든 감각 기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를 「감각 지배 단계」라고 한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는 기분이 매우 황홀해지고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부유감(浮遊感)을 느끼기도 하며 의식 작용은 완전히 둔해져 피최면자는 말문을 열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상태에서는 「후최면암시」를 주기가 매우 용이한데 「후최면암시」란 어떤 특정한 암시가 최면 후에 실현될 것을 목적으로 최면 중에 주는 암시를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애인과 헤어져 슬픔에 잠겨 있다면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등의 암시나 「잊혀진다.」라는 건망 암시를 줌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기억 지배 단계」라고 한다.

연령 퇴행
깊은 최면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바로 퇴행이다.
암시에 의해 피최면자를 과거로 되돌려 그 시절에 경험한 것을 생각나게 하거나 그 때의 감정을 재 체험하는 것이다. 22세의 피최면자에게 「지금부터 내가 22부터 차례로 수를 세어 내려가면, 당신은 일년씩 젊어집니다. 그리고 내가 수세기를 멈추면 당신은 그 연령에서 체험한 것을 기억해 냅니다. 그때의 감정이나 생각까지도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라고 암시 한 뒤 5살 시점에서 수세기를 멈추었는데 피최면자가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으니 유치원 학예회에서 장기 자랑을 하는데 그동안 연습한 것을 잊어버려 나만 혼자 멀뚱멀뚱 서 있다는 것이다. 너무 부끄럽고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엄밀히 말한다면 퇴행에는 2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퇴행 한 연령의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떠올려서 그것을 현재의 관점(입장)으로 마치 극을 상영하는 것 같이 각색하여 태도나 말씨를 보이는 것이다. 피최면자는 고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한다. 두 번째는 실제로 본인이 퇴행 한 연령의 심리상태나 생리적 상태, 혹은 그 당시의 행동이나 습관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6세 때 일시적으로 틱장애;tic disorders를 갖고 있던 사람을 그 시점으로 퇴행하면 다시 틱장애가 나타나는 일이 있다.

시간 왜곡
우리는 누구나 시간을 인식하는 마음의 시계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거나, 일에 몰두할 때, 영화를 볼 때에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집중된 상태에서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려 짧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루한 강연을 듣고 있을 때는, 1시간이 3시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혼자서 3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있으면 「언제 도착 하나」하며 따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즐거운 길동무가 있으면 웃고 즐기는 사이에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긴 여행도 지루하지 않다. 한 시간의 최면 상담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피최면자에게 「시간이 얼마나 지간 것 같느냐?」라고 물으면 「한 20분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는 시간이 1시간쯤 지난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며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요?」라며 놀라곤 한다. 최면 상태에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실험 결과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최면 상태에 있었던 시간을 실제의 시간보다 약 40% 정도 짧게 느낀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설명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최면 상태에는 단위 시간 에 들어오는 정보의 수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뇌에서는 처리해야 할 정보의 수가 적어서 시간을 짧게 측정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에서 측정하는 시간의 길이는 처리해야 할 정보의 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최면 중에 적절한 암시를 내리면,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이 높아진다. 암시는 다음과 같다. 「실제의 1분이, 당신에게는 충분히 길게 느껴져…시간은 매우 , 매우 , 천천히 지나갑니다…이 깊고 , 평온한 최면 속에서는…5분이 1시간과 같이 느껴집니다…그리고 , 당신이 최면으로부터 눈을 떴을 때에는…하룻밤 푹 잔 뒤와 같이 상쾌해져, 기분이 상쾌하고 ……」

환각을 일으킨다
피최면자가 깊은 최면 상태까지 유도 되면 다양한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
「하늘을 보니 정말 많은 별들이 떠 있네요, 보이는 별들을 가르켜보세요」 라고 하면 잇달아 별의 위치를 가리킨다. 이것은 시각의 환각이다. 「지금 당신은 횟집에 와 있습니다. 신선한 회가 나왔군요.」 라고 암시하면 회를 집어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이때, 「겨자를 너무 많이 찍었네요」 라는 암시를 주면 그야말로 괴로운 표정으로 입안에 든 것을 뱉어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것은 시각과 미각 양쪽 모두에 환각을 일으킨 것이다. 또, 칠판을 긁는 소리나, 유리창의 끼익- 하는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칠판을 긁고 있네요.」 라는 암시를 주면 귀를 틀어막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몸을 뒤틀기도 한다. 이것이 청각의 환각이다. 「쓰레기 냄새가 너무 심하군요. 참기 힘듭니다.」라는 암시를 받으면 고개를 돌리며 코를 쥐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은 헛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후각의 환각이다. 깊은 최면 상태에 감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암시에 의해 기쁨, 즐거움, 슬픔, 외로움, 무서움, 분노 등의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것을 「정동의 변화」 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일(학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벌써 밤이 깊어 가는 군요. 당신은 집에 홀로 있습니다. 외톨이에요. 서글프고 쓸쓸합니다.」 라는 암시를 주면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수면과는 다르다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이 「나는 최면이 되지 않은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 최면 중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것은 최면 상태에 푹 잠들어 의식을 잃은 채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면이 수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본래 hypnosis(최면)라는 어원은 히프노스(Hypnos/Hypnus)에서 나온 것이다. 히프노스는 그리스신화에서 잠의 신으로 등장하며, 뜻은 「잠」 혹은 「수면」으로 해석된다. 히프노스는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최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데, 이 지팡이에 닿으면 신이든 인간이든 금수든 초목이든 깊은 잠에 빠지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지 못한다. 현재는 「무대 최면」 이나 과거의 「최면술」정도로만 번역되고 있는 「히프노티즘(hypnotism)」 은 바로 이 신의 이름에서 나왔다. 「최면(催眠)」이라는 한자어도 「잠을 재촉한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최면은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수면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른점이있다. 첫째, 최면 상태에 외관상 보기에는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수면과는 구분되는 매우 독특한 상태로 아무리 깊은 최면 상태라 해도 수면과는 달리 의식이 소멸하는 일은 결코 없다. 하지만, 수면 상태에서는 의식도 함께 잠들어 의식 활동이 정지되어 버린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최면 상태에 최면자와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하면 수면과 달리 일부 의식 있어 현실감각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다. 그리고 최면 상태에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게 되면 스스로 깨어나게 되고 깊은 최면 상태에서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 한동안 자다가 혼자서 깨어나게 된다. 여기서 최면에서 깨어난다는 말은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와는 다르며 최면 상태라는 독특한 변화된 의식 상태에서 현재 의식 상태로 되돌아온다는 뜻을 말한다.


 
꼭두각시 오해
최면 상태에 원하지 않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가? 「최면 상태에 최면자가 시키는 대로 한다.」 라고 하는 것은 오해이다. 피최면자의 기분에 거슬리는 불리한 암시를 줄 때는 거부되게 마련이다. 인간의 보호 본능은 어떤 상황에서든 반사적으로 작동하는데, 최면에서도 마찬가지로 피최면자에게 불리한 암시를 주면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최면자는 피최면자가 바라지 않는 행위, 즉 도덕이나 윤리에 반한 행위를 강박해서 하게 할 수 없게 된다. 최면은 선용(善用)할 때에 한하여 그 위력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피최면자가 이미 지니고 있는 숨은 능력을 일깨워 줄 뿐이다.

비밀 노출 오해
최면 상태에 비밀을 말하거나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가? 피최면자는 자기의 의지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최면자의 협력을 받아 목표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피최면자는 최면 상태에도 자기의 생득적(生得的) 심리와 습관에 따라 도덕적인 면으로나 비도덕적인 면으로 기울어 있다. 따라서 깨어 있을 때와 같이 자신의 사생활이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얼마든지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진실하지 않은 경우 최면에 걸린 동안에도 거짓말을 한다.

못 깨어나면 오해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얕은 최면 상태에 피최면자가 깨어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고, 또 아무리 깊은 최면의 경우라도 각성 암시에 의해 반드시 깨어날 수 있다. 만약 깨우지 않고 두면 최면에서 수면으로 바뀌어 한동안 자다가 깨어나게 된다. 또한, 최면에서 깨어나면 최면 중에 일어난 일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최면자의 각성 암시에 깨어나지 않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는데 피최면자가 싫어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면 상태로 들어가 보니 대단히 기분이 좋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생각에서 각성 암시를 거부하는 경우.
둘째, 최면사가 부도덕한 암시를 주어 피최면자가 최면자의 암시에 저항하고 있는 경우.
셋째, 피최면자가 최면 상태에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경우.
이런 경우에 최면자는 피최면자에게 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인가를 질문하여, 원인이 명확해지고 이해되었을 때 최면을 종결시키는 추가 각성(覺醒) 암시를 주면 쉽사리 깨어나게 된다.


 
자기최면
자기최면(self-hypnosis, autohypnosis)이란 타인최면법과 같은 유도 기법을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적용하여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최면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뿐더러 자기에게 적합한 유도 방법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최면은 암시된 관념에 주의가 집중된 상태이지만 그 주의 집중에 본인의 노력이 수반되어서는 최면 상태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즉, 수동적 주의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최면은 자기가 스스로 에게 유도 암시를 주기 때문에 수동적 주의 집중이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므로 단시일 내에 자기 개선을 기대하며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자기에게 맞는 유도법을 충분한 시간(2-4주)을 갖고 진지하게 연습하게 되면 반드시 자기최면에 성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

타인 최면
타인 최면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패턴의 최면으로 최면자가 피최면자에게 목적에 따라 최면을 유도 해가는 형태의 최면을 말한다. 흥행을 목적으로 마술이나 쇼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는 소위 무대 최면(stage-hypnosis)이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 최면이란 것도 결국 타인 최면의 하나이다. 그러나 모든 최면은 자기최면이라는 말과 같이 피최면자가 최면을 신뢰하고 최면 상태로 들어가 보겠다는 성실한 욕구와 함께 최면자에게 협력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인 최면 유도에서 가장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에릭슨 최면
종래의 최면 요법에서는 어느 정도 형식화 된 유도 기법에 따라 환자를 최면 상태로 유도하여 직접 암시(증상 해소의 암시)를 준다. 일부 환자들은 숙련된 유도자에 의해서도 최면 상태에 들지 않거나, 최면 상태가 되었어도 암시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른바 「최면의 한계」라고 알려져 있었다.
종래의 최면 요법은 증상을 직접적인 목표로 잡아왔으나, 에릭슨은 환자의 심리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주안으로 삼아 간접적으로 증상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환자에게는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치료자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환자가 자기 치유력을 끌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특수한 의식 상태로 유도하기 위한 종래의 최면 방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환자의 자기 치유력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각각의 환자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생긴다.
에릭슨은 환자의 능력, 성격, 직업, 가족, 말투, 생활사, 때로는 환자의 결점이나, 치료에 대한 저항마저도 치료에 이용했다. (자질의 이용). 에릭슨의 방법의 최대의 특징은, 삽화나 비유, 혼란이나 불합리 등의 간접 암시 사용이다.
삽화나 비유를 사용하면 환자의 흥미를 유발하기가 용이하고, 직접 암시와 같이 강요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환자는 필요한 때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이든) 이용할 수가 있다.
밀턴·에릭슨의 방법은,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관하여 새로운 견해를 가져왔다. 의식과 무의식중에 관한 견해는, 지금까지 정신 분석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Freud적인 견해에 의하면 의식은 논리적·도덕적이고 높은 가치를 갖지만, 무의식은 비논리적·비도덕적이라고 되어 있다. 양자간에는 상하 관계가 설정되어 있어 의식이 무의식을 검열에 의해서 지배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정신 분석의 치료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에릭슨은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는 것이 치료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간접 암시 등의 기법에 의해 환자가 무의식인 채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한다. 어느 경우는, 의식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 무의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효과가 있어서 에릭슨은 이야기한 내용을 일부러 망각시키는 수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헤이 리, 밴들러, 세이저, 베잇슨 등 이름 있는 요법가들이 큰 영향을 받은 밀턴·에릭슨의 요법은 후대의 사람들로부터 「기법의 보고이다」라고 불릴 만큼 다양함을 선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요법가들은 에릭슨의 화려하고 다양한 기법에 매료되어 기법에 비중을 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에릭슨 치료는 언제나 재치 있는 언변과 유머러스함으로 환자의 모든 측면을 적극적으로 파악하여 따뜻하게 격려하는 것이었다.


NLP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는 최면처럼 의식보다는 잠재의식에 큰 비중을 두어 새롭게 개량된 방법으로 심층의 마음을 다스리는 최면 기법이다. 사람은 각자가 자기 특유의 성품(마음)과 스타일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끼치게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공, 실패에도 관여하게 된다. NLP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행동 패턴을 창출하기 위해 언어나 신체적인 모션 등의 다양한 기법이 연출되기 때문에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분야에서 던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 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성공하게 한 법칙(패턴)이 있는 데 NLP는 출중한 그들이 사용한 행동 패턴을 찾아내서 그 과정을 프로그래밍한 방법이므로 과학인 것이다. 이 과정을 모델링(modeling)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해서 발견된 패턴, 기법이나 기술은 심리요법뿐만 아니라, 카운슬링, 교육, 스포츠,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 이용하면 신속하고 놀라운 효과를 확실히 올릴 수 있는 것이다.
Neuro Linguistic Programming의 약어인 NLP의 N은 Neuro(신경)의 약어로서 인간 행동은 기본적으로 오감 즉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라고 하는 신경적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오감을 통하여 현상의 세계를 경험하며, 정보를 얻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그 바탕 위에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이해하고, 조정하고, 재구성하는데 N의 의미는 큰 것이다. NLP의 L, 즉 Linguistic(언어)의 부분은 우리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Communication)하기 위해 사고나 행동의 순서를 정해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P, 즉 Programming은 내가 소망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해 사고나 행동의 틀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NLP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주관적 체험의 구조를 어떻게 조직하고, 감각 기관을 통해서 인지한 외부 세계를 어떻게 여과하여 정리하는가를 다룬다. 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말로 묘사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도 다룬다.

자율 훈련
AT(Autogenes Training)로 약칭되기도 하는 이 새로운 자기최면법은 독일이 낳은 위대한 석학 J. H. 슐츠 박사가 연구 개발했으며, 초창기 (1930년대)에는 주로 유럽 대륙에서 연구가 계속되고 이용되어 왔지만 그 후 AT의 진가가 수없이 확인되고 알려지자 근래에 와서는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각처에 보급되어 바야흐로 AT 붐이 일고 있다. 독일에서는 교육과정과 임상 치료를 모두 건강 보험이 지불할 정도로 그 효과가 검증되어 있다. 이로써 그는 인류에게 이바지한 공로가 크게 인정되어 노벨상 후보로 추대되기도 했다. AT의 목표는 이완(Relaxation)을 잘 시킬 수 있는 데 있다. 그렇다고 단지 근육의 긴장을 푸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 단계의 연습을 통해 점진적으로 심리적 내지 생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한편 내적 이완을 토대로 하여 연습자(이상자든 정상자든)가 전반적으로 정신이나, 신체적으로 균형 잡힌 상태가 된다. AT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벼운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아주 긴요하게 이용될 수 있다. 즉 생활상의 적응을 돕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적극적으로 상쾌한 생활을 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마이너스 조건에 있는 것이 임상 상의 환자이고 제로의 조건에 있는 것이 정상자라고 생각한다면, 환자와 같이 마이너스 조건에 있는 사람을 제로의 조건까지 끌어올리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로의 조건에 있는 사람을 플러스 조건에까지 끌어올리게 할 수 있다.

 
 

인류가 생명 활동을 시작하면서 함께 해 왔던 최면 현상은 과학이란 이름으로 논리적 검증을 거치기 이전부터 모든 문화권에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돼 왔다. 먼 옛날 고대로부터 부족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제례 의식, 샤먼(shamans)의 질병 치료를 위한 의식 속의 주술(呪術), 그리고 승려나 성직자들에 의한 종교의식 속에 이미 최면 현상(trance)을 일으키는 최면 기법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주문과 향을 피우면서 트랜스 상태로 유도하거나, 함께 악기를 두드리고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치유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또한, 단조로운 음률이나 율동의 반복과 지속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최면성 트랜스 상태로 유도하여 치유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통해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문헌이나 그림, 벽화에 나타난 여러 가지 증거들을 통해 잘 나타나 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의 여신 이시스의 신전에 있는 조각이나 기원전 10세기 그리스의 「잠의 사원」에서 발견된 벽화에서 최면 상태로 유도하고 있는 모습이 그것을 입증 해주고 있다.

 

메스머의 동물 자기
근대 최면의 창시자로 불리는 메스머(Franz Anton Mesmer;1734-1815)는 오스트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동물 자기설」을 주장하였다. 메스머는 그 당시 영국의 막시밀리안 헬(Maximilian Hell)이 환자를 자석으로 치료한 것에 흥미를 느껴 자력을 사용한 치료를 시도했다. 메스머는 자기 자신이 유체의 생명력을 조성하여 치료의 힘을 환자들에게 전송하는 자석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의 의술로서는 잘 낫지 않던 난치병 환자들이 단기간 내에 치유되는 효과를 올리자 진료소는 문정 성시를 이뤘다. 이것이 메스머가 「동물 자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오늘날 최면을 뜻하는 「메스메리즘;mesmerism」이라는 말도 그의 이론과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다. 훗날 프랑스 정부는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메스머의 자기 요법」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 했다. 그 결과 치유 효과는 인정되지만 그의 주장과는 달리 상상력에 의한 심리 효과이며 자기 이론에 근거를 둔 「자기 요법」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과학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그 후 메스머의 몰락과 함께 최면도 한때 쇠퇴기를 맞았다.

가스너 신부
오스트리아 출신 가스너(Johann Joseph Gassner;1727-1779)는 스위스 동부에서 성직자로 활동하며 「구마驅魔;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세력을 쫓아내는 행위」의식을 행하였다. 가스너는 어슴푸레하게 불이 켜진 방에 환자들을 모아 놓고 거대한 십자가를 들고 나타나 라틴어로 「잠들어라」고 명하여 트랜스 상태로 빠지게 한 후 「이 병에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내재되어 있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지금 즉시 나오라」 라고 선언하였다. 가스너의 구마 의식을 전통적 권위를 배경으로 한 「권위 최면」의 일종이라고 본다면 등장 시에 들고 나오는 수많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 된 커다란 십자가와 구마 의식 중에 이용하는 장엄한 라틴어는 일종의 「위광 암시」를 강조한 연출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환자들의 병이 나은 것은 악령을 쫓았기 때문이 아니고 「악령을 내쫓아 주면 병이 낫는다.」라는 환자의 믿음과 상상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최면 암시의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퓌세귀르
메스머의 제자 중 한사람으로 후작 퓌세귀르(Puysegur;1751-1825)는 오늘날의 최면법에 가까운 유도법을 창안하게 되었다. 그는 우주 유체는 자력이 아니라 전기이며 이 전기 유체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 등 모든 생명체에서 발생한다고 믿었다. 그는 이「전기 유체」를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동안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환자들 중 일부가 「몽유병」상태가 되었으며 그 상태에서도 여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의식도 있었으며 암시에 반응을 보였다. 바로 「자기 수면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파리아 .클로케 .오뎃
포르투갈의 사제 파리아(Abbe Faria;1756?-1819)는 퓌세귀르에게 최면을 배웠다. 파리아는 또 언어 암시만으로 트랜스 상태로 유도하여 환자를 치료할 수 있고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도 밝혀냈는데 아마 근대 최면의 역사에 있어 암시만으로 최면 상태로 유도하여 치료를 행한 것은 파리아가 최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1829년 의과 외사인 클로케(Jules Cloquet)는 메스메리즘 하에서 유방 종양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였으며 1836년 오뎃(Jean Victor Oudet)은 처음으로 메스메리즘을 이용하여 무통 발치를 하는 데 성공하였다.

엘리엇슨 . 에스데일
1840-50년대에는 영국에도 메스메리즘이 상륙했다. 영국의 저명한 의사이자 런던 대학 병원의 교수인 엘리엇슨(John Elliotson;1791-1868)은 1837년에 최면 실험을 시작한 이래로 환자들이 고통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음을 발견하고 그 기술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는 최면 마취만으로 1800여건이 넘는 외과적 수술을 통증 없이 시술하였으며 암시를 통한 신경성 질환의 치료도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비슷한 시기에 엘리엇슨의 제자인 스코틀랜드 출신 외과의 제임스 에스데일(James Esdaile;1808-1859)은 인도에 머무르면서 「자기적 수면;magnetic sleep」이라고 이름 붙인 최면 수술을 함으로써 최면이 보다 과학적 인정을 받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가 행한 무통 수술은 작은 수술만으로도 수천, 대수술은 300건 정도 이다. 그 중에는 손발 절단 수술, 거대한 종양 적출 수술, 무통 분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후 마취제의 발명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였다.

제임스 브레이드
영국의 의사인 브레이드(James Braid;1795-1860)는 굳이 동물 자기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빛나는 물체를 응시하면 최면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현재 최면의 유도법으로서 매우 대중적이고 유명한 방법인 「응시법」의 시초이다. 그는 신경 수면 학설을 도입하여 메스메리즘이란 말 대신 1842년 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hypnos;최면」이란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는 후에 자신의 수면 학설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최면 이라는 명칭을 바꾸려 했지만 무산되어 결국 오늘날까지 그대로 불리게 되었다.

 

낭시 학파 : 리에보 .베르네임
프랑스 시골 마을의 개업 의사 리에보(Ambrose Auguste Liebeault;1823-1904)는 환자들을 최면성 트랜스 상태로 유도한 후「직접 암시」를 줌으로써 치료하는 혁명적인 테크닉을 개발했다. 그는 최면 유도에 있어 환자의 기대감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러던 중 리에보가 최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티푸스(독;Typhus)의 연구 등으로 유명한 베르네임(Hippolyte Marie Bernheim;1840-1919) 교수가 리에보라는 시골 의사를 내방했던 것이다. 베르네임 교수는 자신에게 치료를 받던 극심한 증상의 좌골 신경통 환자가 전혀 호전되지 않자 리에보에게 찾아가 치료를 받게 하였는데 리에보는 직접 암시를 통해 성공적으로 치료하게 된다. 베르네임은 환자가 치료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되어 리에보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20여 년을 함께 최면요법을 이용해 85%의 경이로운 성공률을 보이며 3만 여명의 환자를 치료해 내게 되었고 성공 사례를 모아 암시 치료라는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또 유럽 전역에서 의사들이 최면요법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몰려들었다. 이후 리에보와 베르네임의 제자들을 낭시 학파라고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낭시 학파의 창시자가 되었다.

살페트리에르 학파 : 샤르코
낭시 학파와 쌍벽을 이룬 또 하나의 최면 연구 학파가 있는데, 「살페트리에르 학파」로,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유명한 신경병 이학자 쟝 마르텡 샤르코(Jean Martin Charcot;1825-1893)가 그 중심인물이다. 그는 분리설을 주장한 피에르·자네, 후에 지능 테스트를 개발한 알프레드·비네 등 우수한 제자들을 양성하여 낭시 학파에 대치하는 강력한 학파를 형성해 갔다. 샤르코는 「최면 수면;Hypnosis sleep」의 각 단계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는데 첫째는 경직증, 둘째는 기면상태, 셋째는 몽유병이라 하였다. 이런 샤르코의 견해는 그가 쓴 평론이 1882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되면서 메스머 이래 100여 년 동안 오로지 자기 요법(최면요법)을 계속 부정해 온 일반인과 의학계 그리고 과학계가 마침내 이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로써 샤르코는 최면학 역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최면분석과 정신분석 : 브로이어와 프로이트
1893년 브로이어(Josef Breuer;1842-1925)와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가 「히스테리아에 관한 연구」를 저술해 카타르시스법과 그 이론을 발표하여 후에 정신분석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프로이트는 샤르코와 리에보, 베르네임에게도 최면에 대해 배운 후 브로이어와 함께 이야기 요법(굴뚝 청소)이 어떻게 환자의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이론을 수립했다. 최면 상태에서의 환자가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털어놓음으로써 고통스러운 감정이 경감되어 정서적 해소 현상이 일어남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을 통리 요법(카타르시스;catharsis)이라고 불렀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무의식」을 인정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직접적인 암시가 아닌 방법에 의한 정신병에 대한 최초의 최면 치료가 되었는데 이로써 「최면분석;hypno analysis」이 성립되었다. 브로이어는 정신적 저항 등으로 최면 상태로 유도할 수 없었던 환자들을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이라는 기법을 통해 치료할 수 있었는데 가벼운 수면 단계에서 활용되는 자유연상의 치료 방법은 프로이트로 하여금 「정신분석학」 이란 학문을 완성해 내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또, 초기에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적 입장에서 함께 일하였고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던 융(Jung;1875-1961)도 한때 유능한 최면 치료사였다. 최면으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질병의 원인에 관계없이 증상 치료에 좋은 결과를 나타내자 환자들이 융을 마법사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회의를 품었으며 이 후 최면을 멀리 하였다.

파블로프
「조건반사」로 유명한 러시아의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1849-1936) 는 최면을 계속 사용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최면의 정의를 본래의 수면은 대뇌 피질의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제지한 상태이며, 최면은 대뇌 피질의 일부분이 활동을 정지한 부분적 수면이다.」 라고 하였다.

피에르 자네
1890년 샤르코의 수제자인 프랑스의 신경 학자?심리학자였던 피에르 자네(Pierre janet;1859-1947)는 최면이 갖는 이완 효과와 치유를 촉진하는 효과를 발견 후 열성적인 최면 학도가 되었고 후에 분리 학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후 샤르코의 수많은 오류를 수정하고 설명하였으며 샤르코와 함께 최면 연구에 과학적 방법을 많이 도입하였다.

에밀꾸에
프랑스의 에밀 꾸에(Emile Coue;1857-1926)는 자기암시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임상적 이용을 통해 최면 분야에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본래 약제사로서 대부분의 환자가 마음(자기암시)으로부터 병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깨어 있는 동안에도 암시할 수 있고, 치료 효과도 높일 수 있는 각성 암시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연구와 임상 시험을 거듭하여 마침내 무의식적인 암시가 아닌 의식상의 「자기암시 요법」의 체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꾸에가 환자에게 가르친 암시 중 유명한 것이 「나는 날이면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진다.」라는 것이다. 꾸에는 「암시의 본질은 자기암시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환자가 받아들이지 않는 한 암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피암시자가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암시가 성공하는 필수 조건이라고 하였다.

보크트와 슐츠
독일의 신경과 의사이자 대뇌 생리학자인 보크트(Oscar Vogt;1870-1950)는 자기암시 상태가 환자로 하여금 이완과 상쾌함을 경험하게 하며 정신분석적으로 가치 있는 내면의 무의식적 내용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환자들의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자기암시 상태를 스스로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과 더 쉽게 이완함을 발견하였다. 이 같은 보크트의 연구 보고에 자극을 받은 독일의 슐츠 (Johannes Heinrich Schultz;1884-1970)는 1905년 무렵부터 최면의 정신?생리적 메커니즘에 관해 연구를 시작했다. 슐츠는 최면 상태에서의 공통적 주관적인 느낌인 극도의 무겁고 나른함과 따뜻함을 스스로 자기암시를 통하여 일으킬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무려 20여 년의 오랜 세월을 연구한 끝에 최종 6단계의 암시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암시 체계를 완성해 오늘날의 유명한 자율훈련법(Autogenes Training)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제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많은 전쟁 신경증 환자가 속출하면서 이에 대한 치료 방법으로 「최면요법」이 적합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환자들은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정신분석법과 같이 오랜 기간이 걸리는 치료 방법의 한계로 인해 신속한 치료 효과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많은 병사들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작은 참호에 몸을 감추며 공포에 떨면서 싸우던 장면들이 밤이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시달림을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함으로써 프로이트가 최면을 멀리하고 정신분석을 창시한 이래 최면은 다시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린드너, 월버그, 왓킨스, 긴드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 신경증의 치료에 한층 더 최면요법의 가치가 인정되어 의학자들도 다수 참가하게 되었고 정신분석학에 집중되어 있던 이목이 최면으로 옮겨가면서 1944년 린드너(R. M. Lindner)가 정신분석과 최면을 혼합하여 「최면분석;hypnoanalysis」이라 부르고 최면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5년에는 월버그(L. R. Wolberg)가 최면분석이 이전의 강박적 부적응 행동을 일으키는 무의식적인 충동을 의식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달아 1949년에 왓킨스(J. G. Watkins)가 최면으로 전쟁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여 빠른 효과를 본 사례를 발표하였고 이 사례는 심층적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일에 최면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1951년에는 긴드스(B. Gindse)가 최면분석의 방법을 최면의 새로운 개념에서 더욱 발전시켰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헐(Clark Hull : 1884-1952)은 최면 실험을 통해 최면 상태의 피최면자와 각성 상태의 사람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최면 상태에서는 최면자의 암시를 잘 받아들이게 되는 「피암시성이 고도로 항진」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최면과 피암시성」이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이후 최면이 보다 표준화되고 객관적인 실험 절차에 따라 연구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에릭슨
헐의 제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밀턴 에릭슨(Milton Hyland Erickson;1901-1980)은 현대 최면 요법의 아버지라 불린다. 에릭슨의 업적을 최면에만 한정해 보자면 크게 다음의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방대한 최면 실험을 실시하여 실증적, 과학적인 지견을 축적했다. 최면에 관련한 수많은 미신과 오해를 불식시킨 연구자로써의 실적을 꼽을 수 있다.
둘째, 간접 최면법, 손가락 등을 이용한 관념운동의 원리 등 다양한 최면 유도 기법을 개발하여 피최면자의 적응 범위를 대폭 넓힌 임상가로써의 실적이다.
셋째, 심리요법에 있어서의 최면의 이용에 대하여 발본 적으로 개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밴들러와 그라인더의 NLP 체계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에릭슨은 1959년 미국 임상 최면 학회 (ASCH)」의 창시자가 되었다.

앨먼
데이브 앨먼(Dave Elman;1900-1967)은 1948년 공개 방송에서 최면쇼를 선보이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타고난 최면 능력을 인정받아 최면 강좌를 개설하여 많은 의료인과 최면 전문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또 그는 재빨리 증상의 원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퇴행시키는 방법인 「급속유도법」을 개발하여 현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최면 전문가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최면의 급속한 발전
오늘날 최면의 추세를 보면 1950년대부터 최면은 몇 가지 커다란 뒷받침을 얻게 되었다. 영국,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의학 단체 등에 의하여 정식으로 최면은 가치 있는 수단으로 인정 된 것이다. 1949년 미국 임상 최면 학회(The American Society of Clinic Hypnosis)가 창립되었으며 1955년 4월 23일 영국 의학 협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 (BMA)는 장기에 걸친 조사 검토 끝에 최면은 많은 유용성이 있으며 의료 상 지극히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최면과 암시 기법을 공식적으로 합법화했다. 1958년에는 미국 의학 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AMA)가 최면을 과학적으로 증명된 치료 수단으로 인정하였다. 같은 해에 미국 치과 협회(American Dental Association)는 치의학 분야에서의 치료 수단으로 최면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미국 의학회와 함께 의학 및 치의학 전공 학생들이 최면 교육을 받도록 권고하는 정책을 두기도 하였다. 1961년에는 미국 정신과 학회에서도 최면을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치료의 방법으로 공인하였다. 이미 미국에서는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펜실베이니아, 콜롬비아 대학 등 많은 대학에서 최면 강좌를 실시하고 있으며 1969년 미국 심리 학회는 최면에 관심이 있는 심리학자를 중심으로 심리 최면과를 신설해 놓았다. 그리고 근년 미국 종합병원이 신설한 통증처리실에서는 최면을 실시하고 있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에는 최면 전문 클리닉 센터가 건립되어 환자들이 최면 치료를 손쉽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음속에 마음이 있다.
최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마음의 구조, 특히 마음의 내부에 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장애나, 고통은 속마음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의 행동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며,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마음은 표층의 마음인 의식과, 심층의 마음인 잠재의식(潛在意識)으로 구분되어 있다. 심층의 마음은 무의식적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무의식(無意識)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의식이 없는 상태, 즉 사람이 마취제로 잠들거나 타격을 받아 정신을 잃은 혼수상태를 뜻하며 다른 하나는 내부의 마음으로 최면에서는 잠재의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마음의 작용
이러한 마음의 힘에 관한 이야기는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로도 설명이 된다. 플라세보 효과는 화학적 성분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가짜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실험에 의하면 환자의 약 35%에 이러한 효과가 난다고 한다. 사랑니를 뺀 직후의 사람을 대상으로 진통제와 플라세보(가짜 약)를 잇달아 주어 그 효과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플라세보를 복용한 사람의 1/3은 통증이 훨씬 가셨다고 보고 했다. 이 연구는 플라세보를 진통제라고 의심 않고 믿는 바람에 뇌 안의 엔도르핀의 진통 작용이 일어났음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진통제라고 굳게 믿어 버림은 「마음의 작용」이며 플라세보는 마음의 작용이 뇌의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으며 종래의 견해를 수정하게 한 새로운 문제를 일으켰다.

잠재의식의 작용
그렇다면, 잠재의식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사람의 의식의 영역에서는 선택이나 결정 등의 힘을 갖고 있지만 잠재의식은 본래 전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마음의 이중(二重)의 층(層), 즉 의식과 잠재의식이 작용하는 법칙은 농부와 토양으로도 비유할 수 있는데, 농부(의식)는 밭에 씨를 뿌릴 때 우선 무슨 씨를 뿌릴까를 결정한다. 한편, 땅(잠재의식)은 그 씨가 무엇이든 싹이 나게 하기 위해 영양을 아낌없이 공급해 준다. 키우는 것은 흙의 본성이지만 무엇을 키우는가에 대하여 흙은 관여하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다. 잠재의식도 이와 같아서 행동은 하지만 자유 의식은 없으며, 자기의 목적과 임무만 알고 있을 뿐이다. 잠재의식은 부여된 법칙에 의하여 의식에 요구된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요컨대 잠재의식은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힘을 가지고 주어진 자기 암시대로 그 목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성장 과정에서 온갖 부정적인 말과 행동들을 듣고, 보고 자랐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쁜 씨앗이 심어진 과거 경험이 열매를 맺어 터지는 행위가 병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호주머니에 넣어 둔 송곳 끝이 밖으로 삐져나오듯이 잠재의식에 뿌려진 부정적인 문제들이 현재 의식으로 삐죽이 불거져 나와 자신을 못되고 병든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잠재의식은 암시를 잘 받는다.
최면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심리학자와 그 밖에 다른 학자가 수없이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잠재의식은 사고 작용에 필요한 선택이나 비교 능력이 없다고 한다. 잠재의식은 비록 비합리적인 암시라 해도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데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면 잠재의식은 주어진 암시의 성질에 따른 반응을 보인다. 잠재의식이 암시를 잘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본다. 최면사가 한 사람의 피험자에게 「당신은 이순신 이다.」라고 암시를 주면 그 사람은 정확하게 그 행동을 한다. 그리고 피험자의 인격이 잠시 바뀐다. 본인은 최면사가 암시한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 최면 상태에 있는 피험자에게 「당신은 발바닥이 땅에 딱 붙어 움직이지 못한다.」는 암시를 「당신은 몸이 얼어 있고 기온이 영하이다.」라는 암시를, 「당신은 술에 취해 혀가 꼬인다.」라는 암시를 주었다면 각자 그 생각과 관계가 없는 환경을 완전히 잊고 자기가 받은 암시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잠재의식은 흔히 주관적인 마음이라고 한다. 주관적인 마음은 여러분의 객관적인 감각기 관이 쉬고 있을 때에도 최고의 기능을 발휘한다.

각인된 것은 반드시 실현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의를 용기로 바꾸는, 조개가 자신을 괴롭히는 모래를 진주로 만드는 것과 같은 비법을 알고 있다. 성공을 가로막는 것 가운데 눈먼 운명, 즉 어떤 결과가 충분한 원인이 없는데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는 것만큼 치명적인 오류는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유능한 사람들조차 우연한 행운이 문제를 풀어 주기를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는 일이 많다. 능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가느냐는 자신의 한계를 어디까지라고 생각하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확신하고 확신하라. 확신의 힘이 당신에게 기적을 베풀어 줄 것이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칸트처럼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보라. 「나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 입으로 한 말, 즉 강한 확신에 찬 말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여 있다. 그 말은 잠재의식에 강한 인상을 심어 주고 우리 내면에 있는 무언의 잠재적인 힘이 목표까지 도달하도록 한다. 내일 거둘 수확은 오늘 우리가 뿌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에 성공과 행복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 한 우리는 내일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잠재의식은 잠들지 않는다.
마음의 신비는 어렴풋이 밝혀진 것 이외에는 거의 드러난 것이 없다. 마음의 거대한 잠재력에 대한 이해는 정말 보잘것없이 미미한 상태에 있다. 잠을 잘 때 몸은 의식이 없으며, 자발적인 활동도 중단한다. 그러나 의식은 잠들어도 잠재의식은 항상 활동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심장 등의 장기를 움직이고 있는 생명 유지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 있는 사람에게 속삭인 사랑의 말도 잠재의식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잠재의식은 의식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그 결과를 의식 속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 예를 들면 수학이나 다른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얻지 못한 경우 하룻밤 자고 눈을 떴을 때 영감(靈感)과 같이 해답이 생각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잠재의식의 활동에 의한 것이다.

잠재의식은 농담을 모른다.
현재 의식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여과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가 잠재의식으로 들어가는가는 것이 적당할지를 지성과 이성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잠재의식에는 도덕, 선, 악, 위험, 공포 등과 같은 관념으로부터 생기는 심리적 모순이나 저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잠재의식에 무엇을 새겨 넣든 그것을 실현할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생각과 적극적인 암시를 새겨 넣지 않으면 안 된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은 그러한 생각대로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잠재의식은 행동 에너지의 원천
미국 심리학의 권위자인 윌리엄 제임스 박사(William James)는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는 세계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인간의 잠재의식은 생명과 행동력의 원천이고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잠재의식이 인간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후최면현상(後催眠現象)을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후최면현상이란 최면 중에 최면자가 피최면자의 잠재의식에 어떤 암시를 부여하면 각성 후에 암시대로 행동을 하는 현상으로, 행동의 원동력을 잠재의식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최면 상태에 있는 피최면자에게 「당신은 최면에서 깨어나게 되면 기분이 좋아 만세를 부르게 됩니다.」라고 최면사가 암시한 후 「하지만, 당신이 최면에서 깨어난 후에는 방금 내가 한 말은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반드시 만세를 부르게 됩니다.」 라고 말한 후 최면 상태에서 깨우게 되면 피최면자는 잠시 후 놀랍게도 「만세」라고 외치게 된다. 이때 최면사가 그에게 「왜 만세를 외치는가?」 라고 물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라든지 적당한 이유를 대게 된다.

잠재의식의 힘
사람의 잠재의식은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잠재의식 이야말로 여러분의 이상, 야심, 이타심 등의 근원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외과 의사인 제임스 에스딜은 1843년부터 46년에 걸쳐 이비인후과, 사지 절단, 종양, 암의 적출 수술 등 1,000여 회의 소수술과 300여 회의 대수술을 했다. 모든 수술을 최면 마취로 행했으며 수술 후에 죽은 사망률은 아주 낮아서 2-3%였다는 것이다. 환자는 통증도 없었으며 수술 중에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에스딜의사는 모든 환자를 최면 상태에서 잠재의식에 감염이나 부패는 결코 없다는 암시를 주었다. 게다가 잠재의식은 우리를 늘 보호하고 있다. 마치 든든한 경호원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골목길을 나오다가 차가 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화들짝 놀라 몸을 피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면, 미처 차를 피하지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될 것이 분명하겠지만, 잠재의식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에 우리는 안전하게, 순간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뜨거운 국그릇을 들었을 때, 잠재의식은 화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힘을 저절로 뺀다. 날씨가 더우면 몸 안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땀을 발산하는 것도 잠재의식의 작용이다.

 

 

암시의 기능
사전을 보면 암시란 언어 및 기타의 자극으로 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떤 관념 ? 결심 ? 행동 등을 유발하는 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어떤 자극이나 작용에 대하여 이성에 호소함이 없이 수동적 ? 무비판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암시는 최면 상태에 행해질 때도 있고 각성 상태에서 행해질 때도 있다. 우리는 주위의 많은 환경으로부터 암시를 받고 있다.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던 우리는 오늘도 많은 암시를 받는다. 우리가 듣고 보고 생각한 모든 것은 암시가 되어 잠재의식에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어떤 말을 많이 듣고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한편, 암시에는 긍정적 암시가 있고 부정적 암시가 있다. 만약 부정적인 암시를 많이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불행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책망을 많이 듣고 「너는 왜 그러니, 이 녀석은 원래 그 모양이야,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등등 부정적인 암시로 잠재의식이 찌들려 있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인격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비관적이고 모든 것에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형성되어 문제의 근원을 자신보다 타인이나 환경에 둠으로 성장 의지를 스스로 상실하는 인간이 되고 만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칭찬을 많이 듣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그래 한번 해봐라. 너는 00에 능력이 있다. 너는 참 똑똑하구나, 참 착하구나」 등등 긍정적인 암시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생각이 건전하고 인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된다. 이렇듯 외부로부터 오는 타인 암시가 있는 반면 자기 암시는 자신의 생각에 의해서 잠재의식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암시의 법칙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복적인 말에 의해서 생기는 마음의 변화이다. 잠재의식은 마음의 변화 즉 감동에 의해서 느껴 질 때 훌륭한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긍정적인 말을 반복적으로 하여 자기 암시를 시도하더라도 그것을 믿지 않고 감정이 섞이지 않은 말은 훌륭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신이 되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소원의 모든 것을 자기암시의 원리를 이용하면 그야말로 성공의 지름길로 갈 수 있다. 잠재의식은 상상하고 느껴지면 바뀐다. 당신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것이 잠재의식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반복적으로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성격과 되고 싶은 자신의 미래상, 자신의 소원들을 종이에 써서 틈만 나면 반복적으로 읽는다. 특히 아침에 일어난 직후와 잠자기 전에 느끼는 감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시간에 집중적으로 자기암시를 통해 느끼게 되면 잠재의식은 변화하게 되고 당신 자신은 잠재의식에 따라 변화하게 되고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생에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을 성공하지 못할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평범한 쪽으로 처신하고 행동하게 된다. 자신을 큰사람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그렇게 확신한다면 잠재의식은 그쪽으로 발달하게 되어 잠재능력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하여 가난과 절망과 비참함에 시달려 온 사람들은, 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암시의 법칙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암시의 역할
암시, 그것은 최면사에게는 장사를 위한 자본인 동시에 마음을 지배하고 지시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암시를 최면의 어머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면을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마음속 깊은 곳은 끊임없이 암시에 자극되어 움직인다. 실생활에서 우리의 행위나 체험은 그것을 해서 좋은가, 또는 해서는 안 되는가를 항상 저울질하고 있다. 뱃속이 비었다든가 목이 마르다든가 하는 것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마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우리들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연상적인 암시가 계속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들고 있는 동안까지도 마음의 창조력은 그 자신의 문제나 포부에 관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의식 수준에서 언제나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게 마련인 것이다. 암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 속에서 이처럼 큰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의식해서 일상생활 속에 살리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최면은 타인에게 암시를 작용하게 하는 도구이지만, 자신에게 암시를 걸어서 그에 못지않은 효과를 올릴 수도 있다. 고통을 일시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어떤 불유쾌한 일이나 고민을 느끼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게 자기최면을 거는 것이다.

암시의 위력
암시란 모든 시대를 통해 우리의 생활과 사상에 큰 역할을 다하여 왔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종교의 중심적인 힘이 되고 있다. 암시는 자기 자신을 개선하고 지배하는데 이용하지만 그것은 또한 정신의 법칙을 모르는 타인을 지배하고 조종하는데 쓰일 수도 있다. 암시란 건설적으로 쓰일 경우 생산적인 효과를 안겨다 준다. 그러나 악용될 경우 그것은 모든 정신 반응 형태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의 하나가 되어 갖가지 비참, 실패, 질병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Albert Schweitzer)가 토인의 타부(금지와 성스러움을 뜻한다)에 관하여 놀랄 만한 보고를 하였다. 토인들 사이에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 그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황홀한 상태가 되어, 입에서 말이 나오는 대로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타부를 말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왼쪽 어깨」 하면, 그 아이의 왼쪽 어깨가 타부가 되고, 그곳을 얻어맞으면 죽는다고 믿는다. 「바나나」하고 말하면, 그 애는 커서도 바나나를 먹으면 죽는다고 믿게 된다. 바나나 요리를 하고 냄비를 씻지 않은 채 다른 요리를 그 냄비에 하여 어느 토인이 먹었다. 그 토인은 뒤에 그 냄비로 바나나 요리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토인은 새파랗게 질리며 경련을 일으켜, 치료한 보람도 없이 죽어 버렸다. 물론 바나나 요리를 먹고 죽을 사람은 없다. 그 토인에게 그 냄비에 바나나가 붙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암시는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자기암시의 힘
자기 암시는 타인이나 주변 환경이 아닌 자기 스스로 의식적인 계획으로 잠재의식에 긍정적인 암시를 심어 주는 것을 말한다. 자기 암시는 반복적인 말에 의해서 출발하여 그것을 느끼고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잠재의식에 심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날마다 자기 암시를 걸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하면 긍정적인 암시가 되고, 할 수 없다, 실패할 것이다. 라고 믿으면 부정적인 암시가 되는 것이다. 자기암시를 통해 자신의 의식을 프로그래밍하고, 정신력을 목표 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 신호등 색깔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듯이 자기암시에 의한 명령은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프로그래밍 된다. 반복적으로 뿌려진 생각의 씨앗들을 물리적인 형태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는데 그만큼의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별로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하는 일마다 잘되는 신기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노력파」라는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자신을 믿지 못하고 억압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천재 혹은 성공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무의식적으로 늘 자신을 격려하는 사람들이다. 의도한 것이던 아니든 간에 긍정적인 자기암시라는 훌륭한 훈련법이 천재와 성공을 낳은 것이다. 신체적 구속보다 마음의 구속이, 타인의 구속보다 자신의 구속이 더 무섭다. 마음의 족쇄를 풀지 않은 채 당신은 의외로 자신을 불신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도 습관적으로 부정적 암시를 걸지는 않았는가?

타인 암시의 힘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어지는 암시를 타인 암시라고 부르는데 타인에 의해 강력한 암시를 부여받기 때문에 자기 암시보다 훨씬 더 깊이 잠재의식에 작용시킬 수 있다. 타인 암시의 한 예로 똑똑한 아이에게 계속 머리가 나쁜 아이라고 말을 하게 되면 실제로 능력이 사라지고 위축되어 버린다. 반면 똑똑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계속 똑똑하다고 칭찬해 주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 또 하나의 예로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를 들 수 있다. 평강 공주는 어릴 때부터 울기만 하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라는 타인 암시를 듣고 자랐다. 그 결과 사리 판단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우긴다. 이렇게 온달에게 시집간 공주는 같은 방식으로 온달에게 「나라를 구하는 장군이 되라」는 타인 암시를 부여한다. 수없이 타인 암시를 새겨 넣은 결과 진짜로 온달은 바보에서 장군이 된다. 어린 시절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주변 사람들의 암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가령 누군가로부터 「이 바보야 그것도 못해」 「이 못난 놈아」 「사람 되긴 틀렸군. 등의 부정적인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면 그 말은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어른이 된 후까지 열등감에 사로잡혀 당신의 진로에 장애를 가져오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당신이 어렸을 때 사람들로부터 「영리하구나!」 「잘했어요.」 「정말 훌륭해요.」 등의 칭찬이나 긍정적인 말(암시)을 자주 듣고 자랐다면 이 말은 당신의 장래에 성공을 획득하는 데 힘이 되어 주게 된다. 우리나라의 성악가 J씨도 TV프로그램에 출연 해 초등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커서 훌륭한 음악가가 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 오늘날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Y는 어렸을 때 튀김과 수박을 몇 번씩이나 함께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서 「수박과 튀김은 상극이니까 같이 먹으면 몸에 해롭다.」라는 주의를 듣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Y는 상극이 되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수박과 튀김을 같이 먹으면 반드시 설사와 복통을 일으키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그것들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상극의 음식을 함께 먹었을 때 배탈이 나는 것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한다. 결국, 암시에 의한 영향이라는 것이다.

각성 암시
각성 암시는 의식은 멀쩡한데도 없는 냄새를 맡고, 없는 것이 보인다. 최면에 의한 암시는 사람을 최면 상태로 이끈 의식 하의 마음에 대해 작용하므로 효과가 있다. 마치 최면 상태에서의 암시와 같은 현상이 각성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을 각성 암시라 부른다. 예를 들면, 이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런 실험을 공개한 적이 있다. 20명 정도의 성인들을 모아 놓고 유리병을 하나 꺼내서 「이 병 속에는 달콤새콤한 냄새의 가스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마개를 열 테니까 냄새가 나면 즉시 손을 들어 주세요」하며 마개를 열었다. 슈- 하는 가스 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즉각 몇 명인가 손을 들었고, 그걸 본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손을 들었다. 즉 전원이 달콤새콤한 냄새를 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리병 안에는 그냥 아무 냄새도 없는 보통의 공기가 들어 있었다.

이미지(마음의 영상) 암시
「한 폭의 그림은 천 마디 말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또 미국 심리학계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 박사는 「신념이 지지하는 마음의 그림은 잠재의식에 의하여 현실화시킨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을 부언하면 마치 마술 상자와도 같이 무엇이든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그 생각대로 된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것을 너무 지나치게 이기적인 면으로 악용하면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보복을 받게 되므로 어디까지나 건전한 목적에만 국한할 일이다. 이 이미지 암시법의 테크닉은 다음과 같이 실시한다. 먼저 자기 최면으로 들어간 다음 당신이 바라는 것, 소원이 충분히 이뤄지는 과정이나 이루어진 결과를 당신의 잠재의식 속에 각인하기 위한 명확한 도면을 작성, 그것을 마음속에 그리도록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현실성을 스스로 실감토록 한다. 이를 완수하면 확실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암시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경이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음이나 몸의 병을 일으킬 수도 있고 반대로 마음(암시) 때문에 생긴 병을 고칠 수도 있다.
또한, 암시란 멀쩡한 사람을 죽음에 빠뜨리는 무서운 힘도 지니고 있다.
이같이 경이로운 암시 효과를 어떻게 실증할 수 있을까? 실증할 수 있는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약보다 강한 암시의 힘
미국의 어느 대학 기숙사에서 암시의 반응에 관한 실험을 했다. 약 1000명의 학생이 잠들기 전에 500명에겐 커피를 나머지 500명에겐 우유를 마시게 했는데 아침에 커피를 마신 쪽의 학생들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는 바와 같이 커피에는 카페인이란 흥분제가 포함되어 있어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안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커피에는 카페인을 전부 제거한 것이었다. 반대로 우유 안에는 몰래 카페인을 첨가했었는데 그런데도 우유를 마신 학생들은 깊이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약의 힘보다 암시의 힘이 몸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냉동실에 갇힌 선원의 죽음
1950년대의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화물을 내리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항구에 선착했을 때 한 선원이 짐을 확인하려고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 사실을 몰랐던 다른 선원이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아 버렸다. 갇힌 선원은 소리를 지르고 문을 있는 힘껏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냉동실 안의 식량은 충분히 있었지만 선원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곧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는 냉동실 벽 한 쪽에 시간별로 날짜별로 고난의 이야기를 새겨 나갔다. 그의 꼼꼼한 기록에는 냉기가 코와 손가락을 꽁꽁 얼리고 몸을 마비시키는 과정이 적혀 있었고 찬 공기에 언 부위가 견딜 수 없이 따끔거리는 상처로 변해 가는 과정 또한 묘사되어 있었으며 자기의 온몸이 조금씩 굳어 결국 얼음 덩어리로 변해 버리는 결말까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배가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냉동실의 문을 연 사람들은 꽁꽁 언 채로 죽어 있는 선원을 보고 기겁을 했다. 하지만, 후에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컨테이너 안은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냉동 장치는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선원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상상력이었다.

할머니 손은 약손
어린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말하자, 할머니가 달려와 아이를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할머니 손은 약손이야, 이젠 괜찮아, 아프지 않지!」라고 말해 주면 아이는 이내 밝은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뛰어 노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절대 신뢰의 대상이므로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통증을 멎게 하는 암시 효과가 즉각 일어난 것이다.

어느 사형수의 죽음
한 사형수를 시험 대상으로 등장시켜 그 사형수의 눈을 눈가리개로 가리도록 하고 온몸을 엄중히 의자에 결박시켰다. 그 다음 사형수에게 「자! 지금부터 당신의 목으로부터 한 방울씩 혈액을 흐르게 하여 온몸의 피를 모두 빼 버리는 방법으로 사형 집행을 하겠노라」라고 알렸다. 그리고 실험자는 그 사형수 목에 침 끝으로 미세한 상처를 내고, 흡사 그 상처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도록 그의 목에 물을 떨어뜨려 흘러내리게 하는 한편 그 물이 마룻바닥에 한 방울씩 소리 내며 떨어지는 장치를 해 놓았다. 이렇게 6분쯤 지난 뒤 실험자는 사형수에게 「이제 당신은 몸에 있는 혈액의 3분의 2가 빠져나갔다.」라고 말(암시)했는데 그 말을 사실로 믿은 사형수는 그만 절명해 버렸다고 한다.

모의재판에서 절명한 수위
영국 어느 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 대학에는 수위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학생들로부터 혹심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어느 날 장난이 심한 젊은 학생들이 그를 끌어다 교실에 감금시켜 놓고 모의재판이라 선언한 뒤 그 수위를 피고로 하여 학생들은 번갈아 가며 그의 죄상을 지적한 후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실 중앙에 나무막대기를 위시하여,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도끼를 꺼내 놓고 그에게 3분간의 유예를 주어 참회를 시킨 다음 천국에 갈 준비를 시켰다. 이윽고 3분이 지나자 학생들은 공포에 떨고 있는 그의 눈을 눈가리개로 가린 다음 강제로 끌어내어 교실 안의 나무토막 위에 머리를 올려놓게 했다. 그리고 한 학생이 그의 등 뒤로 돌아서서 냉수에 젖은 수건으로 흡사 도끼로 내려치는 것 같이 그의 목을 후려쳤다. 그러자 수위는 기절하는 것 같이 보이자 이에 가담했던 일동은 우와- 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잠시 후 학생들은 수위에게 이젠 용서할 테니 일어나라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수위는 굳은 채로 조금도 움직이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학생들은 가까이 가서 확인 해보니 수위는 이미 죽어 있었다. 수위는 젖은 수건으로 목을 칠 때 정말 도끼로 목을 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죽고 만 것이다.


처방 암시문의 작성을 위한 10가지 열쇠
자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개선하기 쉬운 것부터 순서대로 목록을 작성한다. 그런 다음 개선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도록 한다. 처방을 잘한 약이 좋은 약효를 주듯이 자기 암시의 경우도 암시문의 처방을 잘해야만 좋은 암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나는…….」이라고 말하라
암시문을 만들 때는 반드시「나는」하고 말하라. 만약 목표의 하나가 많이 웃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나는 아주 잘 웃는다.」 가령 「웃으면 친구가 생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말은 부담 없이 듣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당신 자신에게 감정 자극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잠재의식은 그것을 믿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암시는 긍정적으로 하라
당신이 피하고자 하는 일이 아닌, 바라고 있는 것을 말하라.
만약 당신이 사람들에게 더욱 친절해지고 싶으면 이렇게 하라. 「나는 사교적이며 누구에게도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이것은, 「나는 누구에게나 불친절하지 않고, 사교적인 사람이 되겠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표현이다. 「불친절」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또, 「나는 건강이 나쁘지만 이제부터는 날이 갈수록 건강해진다.」의 「나쁘지만」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자신이 건강이 안 좋았다는 부정적인 암시가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암시의 목적은 자신을 긍정적인 감각으로 향하게 하여 그것을 키워 나가는데 있다.

현재 시점에서 완료형으로 말하라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만 말한다. 의문의 여지없이 확신적인 의미를 갖도록 한다. 또 목표가 이미 실현된 것처럼 말한다. 만약 늘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있고 싶다면, 「나는 차분하며 평온한 기분이다.」라고 말한다. 「될 것이다. 이루어질 것이다.」와 같은 미래형은 확신적인 의미가 약하므로 「된다. 이루어진다.」와 같이 한다.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불확실한 가능성을 미래에 두고 한 말이 된다. 잠재의식은 그런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그 말의 뉘앙스는 당신은 지금 자주 짜증을 낸다는 것이 되므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꺼낸 셈이 된다.

수용 가능한 암시를 하라
겨우 살아가는 처지에 「나는 곧 백만장자가 된다.」라는 등, 자신의 형편을 참작해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적합한 암시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오해나 잘못된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한다. 만약 좀 더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고 싶다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분 좋게 남을 칭찬한다.」 이것은 명확한 선언이다.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다. 「나는 남을 칭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때로는 남을 칭찬할 수도 있다.」라는 표현은 애매하다. 이 경우 어느 정도 노력을 하든지, 또 「때로는「이란 어느 정도인지 자문하고 싶어진다. 「때로는」 이외의 때에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 마지막 질문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잠재의식은 혼란되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비교하지 말고 간단명료하게
비교가 아닌 절대평가로 말하라. 「최상」이라든가 「최소」 혹은 「최대」라는 말을 피한다. 가령 당신이 시간 관리를 잘하고 싶다면, 「나는 매일의 시간 계획을 효과적으로 세운다.」라고 말한다. 「나는 직장의 누구보다도 시간 관리를 잘한다.」라든가, 「나는 최고의 시간 관리자이다.」라는 표현은 불명료(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할뿐만 아니라 적의 있는 경쟁심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명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수식을 넣어 작성
어감이 좋은 암시는 호소하는 힘이 강하다. 되도록 감정 자극을 크게 받을 수 있는 문장이나 단어를 선택한다. 단지, 「다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할 때에는 언제든지 시간을 내준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약간의 수식을 가하여, 「다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시간을 내준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라든가, 「남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어 준다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점진적으로 암시하라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즉시 개선이 시작되어 조금씩 나아져서 점점 속도를 증가하는 것으로, 완전히 낫게 되면 지속적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암시문을 작성할 것. 난청의 경우 「오늘부터 나의 청력은 점점 호전되어 나날이 잘 들리게 된다. 그 호전 상태는 서서히 속도를 증가하여, 되도록 짧은 기간 내에 아주 잘 들리게 된다.」 이와 같이 상태가 좀 심한 증상은 잠재의식에 부담을 적게 해야 목적 수행이 빨라지게 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효과가 생기면 「오늘부터 이미 회복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라는 것으로 처방 암시를 바꾼다. 「나의 호흡은 벌써 편하게 되고 있다.」 결과가 얻어지면 「지금 행복하고 안락하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환부는 한층 보강되어 완전한 건강 상태가 된다.」라고 처방 암시를 준다. 완전하지 못하지만 경감된 경우는 「벌써 상당히 편하게 되었다. 조만간에 완전한 회복된 상태가 지속된다.」라고 암시를 준다.

동기도 암시하라
동기가 부족하면 의지는 약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을 개선하고 자하는 성실한 욕구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동기를 유발시키고 강화 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담배 없이는 못산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기침이 잦았는데 동네 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았지만 별다른 증세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큰 병원을 한번 가보시죠」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의사의 권유로 종합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게 되었다. 검진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의사는 청천 벽력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지 마십시오. 폐암입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어 다시 확인했지만 의사는 하루라도 빨리 입원 수속을 밟으라는 말 뿐이었다.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에 말문이 막힌 그가 과연 예전처럼 담배 생각이 나겠는가? 무엇을 이루고자 자신에게 암시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기라는 것을 명심하라.

성급한 확인은 금물
처방 암시를 주고 매일 과연 그 효과가 어떤지 확인하려 하는 것은 그 암시의 효과를 무효화시키기 쉽다. 그것은 농부가 씨앗을 뿌려 놓고 싹이 트는지 자주 땅을 헤쳐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잘 돋아나던 싹이 시들고 말지도 모른다. 처방 암시의 효과는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을 확신하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암시 효과가 나타나게 되면 농부가 때때로 김을 매고 거름을 주듯이 처방 암시자는 부정적 생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한편 자주 처방 암시를 보강시키도록 한다.

 

암시 효과가 놀라운 최면
최면 상태로 유도되면 극히 용이하게 암시에 감응하게 되며 보통 각성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들이 일어난다. 「팔을 구부릴 수 없다.」라는 암시를 주면 피험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팔을 구부릴 수가 없게 된다. 또 「당신 손등의 감각이 없어졌다.」라는 암시를 받게 되면 바늘로 찔러도 아픔을 못 느끼게 된다. 피부 감각 탈실 이외에도 미각, 후각, 청각, 시각 등도 암시에 의해 지배할 수가 있다. 즉 「입 안이 쓰다.」 하면 쓴맛이 「달다.」 하면 단맛을 느끼게 할 수 있고, 암시에 따라 향취와 악취를 맡을 수 있게 된다. 또 「당신은 새가 된다.」 「지금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라고 암시를 주면 피험자는 그런 환각에 빠져 매우 기분 좋은 표정을 하며 양팔을 날개와 같이 벌려 하늘을 날고 있는 시늉을 한다. 또 「당신의 이름을 잊었습니다.」라고 암시를 주면 망각이 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하게 되고, 연령 퇴행법을 쓰면 어린 시절로 퇴행이 가능하며 평소에 까마득하게 잊었던 옛날 기억을 회생시킬 수 있게 된다. 또 다음에 말하는 후최면 암시를 통해 최면 중에 준 암시가 각성 후 실현되게 할 수도 있다. 후최면암시란 최면에서 깨어난 뒤에 특정의 암시를 실현하게 할 목적으로 최면 중에 주는 암시를 말하는 데 암시를 주기에 따라서 최면에서 각성 후에 즉각 효과가 나타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최면 요법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후최면 암시를 반복하라
처방 암시가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믿음에 작용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동기 유발, 상상력, 그리고 기대이다. 당신이 개선하고자 하는 동기가 명확하고 그것을 상상하고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동기가 유발되고 처방 암시문이 준비되었으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암시(처방 암시)를 부여할 단계에 이른 셈이다. 높은 암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최면 상태로 유도한 후에 후최면암시(처방 암시)를 주도록 한다. 암시를 주는 방법은 마음속으로 주어도 되지만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어 자기 귀에 들려주는 방법이 암시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잠재의식은 청각 신경을 적당히 자극을 줬을 때 반응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암시 효과는 반복에 의해 강화되므로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되풀이하여 주면 좋다. 인도 사상에 의하면, 무언가를 만 번 말했을 때 그 자체로 만트라(眞言, mantra)가 된다고 한다. 만트라를 직역하면 끊임없는 반복으로 계속해서 채워지는 성스러운 말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무심코 내뱉는 「난 못하겠어.」 「휴…. 정말 나는 재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럼 그렇지….행운은 늘 나를 빗겨 간단 말이야.」 「하는 일마다 안 돼」 등 과 같은 말로 만트라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산스크리트어로 만(man)은 정신이나 마음을 뜻하고, 트라(tra)는 해방을 말한다. 마음에 엉켜 있는 부정적인 찌꺼기들로부터 벗어나 긍정적인 만트라로 나를 평화롭게 하자. 잠재의식은 우리가 잠자고 있는 그 시간에도 쉬지 않고 가동한다. 그러므로 잠들기 전에도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암시문을 사용하자. 결국, 후최면암시란 행동의 원천인 잠재의식 속에 고착되어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삶의 행동 패턴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