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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을 극복하다

웃음관리자 2006. 10. 30. 22:22
병(病)과 친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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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

저는 경기도 양평에 사는 음혜철 이라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어지럼증이 있어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화장실에 갔더니 오줌 색깔이 핏빛이었습니다.
가족은 눈동자가 너무 노랗다며
빨리 병원에 가보자고 했어요.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지금까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사람인데
무슨 병이 있다는 거냐,,! 라면서
“의사 앞에서 큰소리를 쳤지요.
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했죠.”
다음날 입원한 뒤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불안감은 곧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작년 8월15일 췌장암 진단을 받았답니다.
내가 췌장암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는 많이 진행되긴 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살 가능성은 있냐는 물음에
5%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수술을 하잡니다.
또 다른 의사에게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수술을 하면 살 가능성이 있냐고?
수술을 한 환자 가운데
5년째 생존한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는 말에
저는 수술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여기저기 알아봤다며
암은 건드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오히려 낫다는 말을 하며 반대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수술 대신 자연요법으로 치료를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했지만 가족들 말을 따르기로 하고
8월 말에 퇴원을 했습니다.
특별히 심하게 아픈 곳은 없었지만
마음은 지옥 같았습니다. 너무 화가 났어요.
왜 내게 이런 병이 온 것일까?
누가 남산에서 돌을 던졌는데
그 많은 서울 시민 가운데 하필
내가 콕! 하고 맞은 것 같았습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두려움도 몰려왔습니다.
잠도 못자고 그렇게 몇 달을 보냈습니다.
연말쯤에야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병원치료에 대한 미련

그래 이것도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막상 죽음을 받아들이니
세상에 “미운 놈도 이쁜 놈도 없었죠.”
지난해 말 평소 쓰던 사진기를 설치해 놓고
스스로 영정 사진도 찍어뒀지요.
그런데 죽기 전에 병원치료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병원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수술만은 않는다고 하자
항암 약물치료를 권했습니다.
그래 1주일에 1번씩 항암치료를 받았지요.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창자를 가위로 자르는 것 같았어요.
1주일에 6일은 모르핀을 먹어야 했어요.
통증이 잦아질 때쯤이면 또 항암주사를 맞을 때,
그렇게 6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했습니다.
항암치료와 장기간의 모르핀 복용으로 장 무력증이 생겼습니다.
변비가 생겨 그 통증 때문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답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의사는 변비라며
약만 주면서 돌아가라고 했어요.
너무 아파서 동네 병원에 찾아갔더니
그나마 관장을 해주셔서
시멘트같이 딱딱한 변을 볼 수 있었어요.
살 것 같더라구요.”

다시 자연으로

저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원래 결정한대로 “자연“에 맡기고
항암 약물치료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가족들도 찬성했습니다.
우선, 채식 위주 식단과 ‘야채탕’을 계속 먹었습니다.



다시마 가루를 먹었더니
지독한 변비는 거의 사라졌고요.
가벼운 산책 위주의 운동도 계속했습니다.



저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제 삶을 쭉 되돌아 보았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업을 하면서 얻은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깁니다.
1997년 아이엠에프 위기로 직장마다 퇴직 바람이 불 때
22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 두면서
“직장생활은 할 만큼 했으니
남은 삶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지요.
퇴직 전 구상했던 카센터와 세차장은
점찍어 뒀던 곳의 땅값이 두 배로 뛰어 포기해야 했고
또 주식투자로 3억원을 날리고
부동산 투자에도 실패해 퇴직금 2억원과
그동안 모은 재산 상당 부분을 잃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다투기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쾌활하고 붙임성이 있어 친구들은 많았지만
꼼꼼하고 소심한 저의 성격인지라
사업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 않았나,,생각합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려다
돈도 잃고 병도 얻었다는 생각까지 든 것입니다.
이제 지난 일은 없습니다.
생각을 줄이기 위해 뒷산에도 오르내리고
일단 몸을 많이 움직입니다.



현미밥·무농약 채소 먹고 야채탕 달여 마시고…

그래서일까요? 아니 맞습니다.
분명한 것은 암세포가 줄어들고 있다니까요.
요즈음엔 사는 게 참 행복해요.
그간 고생한 아내에게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요,!
여러분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시골마을에 살면서 채식 위주의 식단과 운동으로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음혜철(오른쪽)씨와 자연주의 식단으로 음씨의 병구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내 이단원씨가 텃밭에서 기르고 있는
김장용 배추를 돌보고있다.]




* 한겨레신문 10월 25일자
글,사진/권복기 기자님의 양해를 얻어 건강편지로 정리하였음.

** 야채탕요법 이란 ? - 같은 양의 무우, 무우청, 표고버섯,
우엉, 당근을 달여서 매일 수시로 마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