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등대
이재숙 현대제이콤 부회장 본문
입력 : 2008.05.23 13:51 / 수정 : 2008.05.24 20:29
- 밝은 빛깔의 재킷을 입은 현대제이콤 이재숙 부회장은 "나는 불도 안 땠고, 연기도 안 났다. 세상이 호들갑을 떤 것이다"라며 '제2의 린다 김'이라는 세간의 소문을 일축했다. /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 '제2의 린다 김'으로 알려졌지만 본인은 로비스트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는 여(女)사업가가 있었다. 한때 국내 기자 수백 명이 추적했던 이재숙(李在淑·50) 현대제이콤 부회장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카페에 들어서자 베일 속에 가려졌던 그가 앉아 있었다.
이 부회장이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4년이다. 그때 육군은 C4I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C4I는 지휘(Command)·통제(Control)·통신(Communication)·정보(Information)·컴퓨터(Computer)의 약자(略字)다. 이 모든 것을 연결해 얻은 정보로 전투를 자동 수행한다는 전투 시스템이다.
3단계로 진행된 총사업비 3000억원의 C4I사업권을 두고 당시 삼성SDS, 쌍용정보통신, LG CNS, HIT가 맞붙었다. 1단계에서는 시스템 통합업계의 절대강자 삼성SDS가 이겼지만 2, 3단계의 승자(勝者)는 번번이 이 부회장과 손잡은 업체에 돌아갔다.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
그러자 "이씨가 군 고위층에 로비했다" "골프를 기막히게 친다" "기무사가 내사를 벌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2000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린다 김(본명 김귀옥) 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이 부회장에게는 '제2의 린다 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부 언론은 '린다 리'라고도 불렀다.
그는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에 걸쳐 캄보디아에서 유전(油田)개발권, 타지키스탄에서 우라늄 채광권 양해각서를 교환할 예정이다. 집요한 언론의 추적을 뚫고 사라진 지 4년 만에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무대를 넓힌 반전(反轉), 이 독신 여사업가에게 그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취재에 앞서 사전 조사를 해봤는데 아무 정보가 없더군요. 전문가가 세탁해낸 것처럼 신상 정보가 차단된 이유가 뭡니까.
"당시는 제가 하루 4~5시간 자면서 일할 때였어요. 그런데 로비스트다, 제2의 린다 김이다 하니까 기자들이 제 뒤를 쫓아다녔어요. 그때 살이 3㎏이나 빠졌어요. 그 사건 후 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삭제했어요."
―기자가 어떤 존재로 보이던가요.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데 명수들이더군요. 제가 지금까지 한 월간지 기자를 만난 게 유일해요. 그도 '기사 안 쓰겠다'고 하더니 그냥 써버렸어요. 제 기사가 나간 뒤 그 월간지가 창간 이래 제일 많이 팔렸대요."
―C4I사건으로 돈은 많이 벌었나요.
"얼마 못 벌었어요."
―골프를 잘 치나요.
"골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을 아나요.
"저는 불도 안 땠고 연기도 안 났어요. 세상이 호들갑을 떤 거죠."
기자들은 만나기 힘든 취재원을 보면 습관적으로 '주민등록'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정보가 없는 취재원일 경우에는 사연을 듣는 것보다 그 사람에 대한 기본 정보를 가장 먼저 묻는다. 주민등록이란 기자 사회에서 신원(身元)을 파악한다는 뜻의 은어다.
이 부회장은 1958년 6월 11일생이다. 경남 거제도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혈액형은 O형이다. 그의 아버지는 기관장을 하다 나중에 배 몇 척을 사들여 선주(船主)가 됐다. 당시로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셈이다. 이 부회장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포항에서, 고교는 대구여고를 나왔다. 한양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음악교육대학원까지 마쳤다.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이 부분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 그의 고향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같다. 이 부회장이 초·중학교를 다닌 포항은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대통령의 형 이상득(李相得) 의원의 고향이다. 그가 나온 대구여고는 대통령 부인 김윤옥(金潤玉) 여사가 나온 학교다. 김 여사는 1947년생으로 이 부회장보다 11살 위다.
―대통령 부부와 친합니까. 김 여사와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라는데.
"대통령은 몇 차례 뵌 정도예요. 김 여사도 학교 동문회 때 여러 차례 만난 정도입니다."
―최시중(崔時仲) 방송통신위원장을 오빠라고 부르는 사이라면서요.
"그분을 오빠라 불러본 적이 없어요. 저는 안다고 하지만 그분들은 절 모른다고 할 거예요.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하고는 막역한 사이예요. 이번에 힘들어했을 때 위로해줬어요. 저는 잘나가는 사람은 안 만나지만 어려울 때는 돕는 성격입니다."
―본인은 아니라지만 자꾸 정권과 연결이 되니 이상한 걸 연상시키는 것 아닌가요?
"한국 사람들은 왜 여자가 사업을 하면 전부 이상하게 보죠? 저는 언론에 한번 데고 나서 공기업하고는 일을 안 해요."
―요즘 정권과 줄을 대려면 이 부회장을 만나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던데요.
"저는 사업가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됩니까."
이 부회장에게는 방산업계(防産業界)의 여걸(女傑)이라는 칭호도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C4I사업 이후 국내 방산업보다 해외 사업에 더 치중하고 있다. 능력보다 소문과 억측이 지배하는 국내 비즈니스에 신물이 나 무대를 바꿨다는 그의 관심 영역은 해외 자원개발이다.
요즘 그는 1년의 3분의 1을 외국에서 보낸다. 석유, 천연가스 같은 자원개발 권리를 획득하고 석유를 대체하는 바이오에너지 생산을 위한 토지매입 사업도 벌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캄보디아 유전 개발권은 공식 발표를 앞둔 상태다. 6월에는 타지키스탄에서 우라늄 채광권 양해각서를 교환할 예정이다.
―어떤 나라에서 활동하나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관심이 많아요.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에 자주 가지요."
―주로 독재국가군요.
"그런 나라가 일하기는 편하지요."
- 이재숙 부회장은 훈센 총리(왼쪽)으로부터 캄보디아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녹색훈장을 받았다.
-
―현 정부가 강조하는 자원개발과 이 부회장의 자원개발은 무슨 관계가 있나요.
"큰 틀에서는 같죠. 경제발전을 위한 거니까요. 캄보디아뿐 아니라 몇 건이 올해 안에 수주(受注)될 겁니다. 물론 저 혼자 하는 건 아니고요, GS칼텍스하고도 관계가 있어요."
―그 나라들에서 어떻게 사업을 벌입니까.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주로 하죠. 봉사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 마음을 사는 것도 있지만 우리 60, 70년대처럼 못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지죠."
―어떻게 봉사활동을 합니까.
"헌 옷 모아다 주기도 하고, 축구공 같은 것 사다가 그 나라 어린이들 주기도 하죠. 처음에는 남들한테 기증 받아서 갔는데 요즘에는 제 돈 써요. 그렇게 하면 우리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은 물론 하죠."
―선진국보다 후진국이 편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이 성장하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우리가 미국 가서 사업하면 어렵잖아요. 후진국에 가면 우리가 성장하면서 겪은 노하우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죠. 이명박 대통령이 7% 성장률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건설업밖에 없잖아요. 우리나라가 후진국가에 가서 아파트 짓는 경쟁력은 대단하잖아요. 제가 요즘 캄보디아를 자주 가는데 도시를 바꾸는 작업도 하고 드라마 제작도 거기서 해요."
―드라마에도 관계하나요? 어떤 드라마죠?
"작년 말엔가 방영했을 거예요.'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인가 SBS에서 방영한 거요."
―그렇게 봉사활동 하면 그 나라에서도 인정해주나요?
"저 얼마 전 캄보디아 훈센 총리로부터 녹색훈장 받았어요. 민간인에게 주는 훈장 중에는 최고래요. 캄보디아 국왕이 사인한 훈장이에요. 수상자 가운데 여자는 저 혼자였고요."
―그런 식으로 하다보면 권력층에 접근할 수 있나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죠. 제가 이번에 캄보디아에서 유전 개발권 계약을 할 예정인데 고위직에 있는 사람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콱 꿇었습니다.'우리나라에 이 자원이 꼭 필요한데 저와 계약해줘야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뭐라던가요.
"나라(한국)를 그렇게 사랑하느냐며 놀란 눈치더군요."
―그럴 때는 빈손으로 갑니까.
"당연히 선물을 들고 갔죠. 배(梨)를 5박스 사갔어요."
―그런 거 말고 비자금 같은 거….
"그 나라에서는 먼저 돈 달라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으로 보면 돼요. 계약이 되고 나서는 모르지만 그전에 요구하지는 않아요."
―척 보면 사기꾼을 압니까.
"알죠."
―사기 당한 적은 없겠네요.
"딱 한 번 브라질에서 당했어요. 어느 부처 장관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알선료를 요구해 돈을 줬어요. 만나고 보니 장관이 아니었어요. 한국대사관을 가보니 알선자가 유명한 사기꾼이더군요."
―돈을 찾았나요?
"어떻게 찾아요. 날렸죠."
이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외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를 국내에 수입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고급품을 들여와 차익을 붙여 파는 방식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그 여세를 몰아 '광맥'이라는 광고회사를 차렸다. 이 부회장이 대주주였던 이 회사는 IMF 외환위기 때 문을 닫았다.
―그 나이에 회사 대주주가 될 정도면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집안이 부유했겠군요.
"제가 다 벌어서 한 거예요. 저 고생 많이 했어요."
―광맥이 망한 뒤 곧바로 재기했나요?
"당시 결혼할 사람이 있었는데 암으로 사망했어요. 그 충격으로 거의 3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IMF 때 저는 사업도 접고 결혼도 접었어요."
―그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까.
"제가 마음이 굉장히 여려요."
―많이 사랑했던 모양이죠.
"그 사람이 죽은 뒤 이상한 일을 많이 겪었어요. 제가 기독교인인데도 그 사람이 제 꿈에 자주 나타났어요. 한번은 '우이동에 삼성사라는 절이 있는데 내가 배가 많이 고프니 제사를 지내달라'는 거예요. 가보니 정말 그런 절이 있었어요. 제가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또 꿈에 옛날 옷을 입은 채 나타나 '내려가라'고 하더군요."
―IMF 때면 이 부회장 나이가 40이 다 된 때 아닙니까? 그렇게 사랑했으면 왜 빨리 결혼하지 않았나요.
"원래 사귀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반대했어요. 두 번째 만난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사귈 때 몰랐는데 죽고 나서 더 사랑하게 됐어요. 왜 자꾸 제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싶어 사주(四柱)를 보기도 했어요. 수도승 사주로 나오더군요. 남자는 없고 도 닦는 팔자래요."
3년 뒤 겨우 몸을 추스른 이 부회장은 J&파트너라는 소프트웨어회사를 만들어 중국 진출을 시도했다. 중국 난시앙 그룹과 일을 했으나 기대했던 만큼의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이 만든 회사에는 유달리 J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이 부회장은 "이재숙의 J라는 뜻 외에도 카지노에서 대박을 뜻하는 잭팟(Jackpot), 협력을 뜻하는 조인트(Joint)라는 뜻도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경영난을 겪던 하이닉스의 전신(前身) 현대전자의 한 파트를 인수해 지금 자신이 2대 주주로 경영권을 쥐고 있는 현대제이콤을 설립했다.
―대학 때 전공은 작곡인데 의류, 광고, 소프트웨어에 방산(防産)업체(현대제이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먹고사는 것이 일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가 인맥이 조금 넓어요. 그래서 그렇게 된 겁니까."
―인맥은 어떻게 구축하게 됐나요.
"사람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요. 그게 타고난 복인지도 모르죠. 제 성격이 남자처럼 화끈하거든요."
―사람을 좋아한다고 인맥이 만들어지나요? 우리 같은 기자들도 사람은 많이 만나지만 인맥 만드는 것은 성격이 다르잖아요.
"저는 안 그렇던데. 지금 국내보다 해외 비즈니스에 치중하고 있는데 외국에 인맥이 더 많아요."
―술을 잘 마십니까.
"술자리에 가면 먹죠. 소주, 양주 안 가립니다."
―폭탄주도 마십니까.
"잘 마실 때는 40잔 정도 마셨어요. 요즘은 그렇게 안 마시지만."
―현대제이콤은 어떻게 만든 겁니까.
"제가 돈이 얼마 없어서 대주주가 못 되고 2대 주주가 됐어요. 그때 제 돈이 5억~6억 들어갔습니다. 1대 주주는 기산텔레콤이죠."
기자는 언론을 혐오한다는 이 부회장이 왜 이 시점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궁금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한국은 여성이 사업하기 힘든 곳입니다. 2004년에 저를 두고 난리가 났을 때 기자들에게 2008년이나 2009년쯤 언론과 만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때쯤이면 제가 구상하던 사업의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방산업계의 여걸, 로비스트, 해외 자원개발, 정권과의 친분…. 이런 칭호들을 들으며 오랜 사건기자 경험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혹시 큰 사건 때 이 부회장과 제가 다시 만나는 것 아닐까요?"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저는 사업가고 굶어 죽을지언정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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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김과는… "우연히 비행기 앞뒤에 않은적 있어"
이 부회장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린다 김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회장은 린다 김을 '그 여자'라고 지칭하며 "그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여러 번 말했다.
―영문 이름이 린다 인가요.
"무슨 린다예요? 언론이 붙인 거죠."
―린다 김과 비교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기분 나빠요. 얼굴도 제가 훨씬 예쁘잖아요."
―린다 김을 본 적이 있나요.
"그쪽에서 '한번 보자'고 연락 온 적은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여자를 왜 만납니까. 거절했지요. 2004년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로 오는 대한항공기 일등석에서 우연히 앞뒷자리에 앉은 적은 있어요."
―느낌이 어떻던가요.
"얼굴이 되게 세게 생겼더군요."
―어떻게 생긴 게 세게 생긴 겁니까.
"하여튼 그래요."
―비행 내내 기분이 묘했겠군요. 제가 린다 김이었다면 뒤가 찔려 한번 돌아다봤을 법도 한데요.
"눈이 마주친 적은 없는데 굉장히 특이하더군요. 저는 장시간 비행하면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그냥 자버려요. 린다 김은 10시간 넘게 머리도 뒤로 안 기대고 빳빳하게 앉아있더군요. 머리가 망가질까봐 그러는 것 같아요. 승무원들에게 물어보니 항상 그런 자세래요. 자리도 일등석 1번에만 앉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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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5월 9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주)현대제이콤 이재숙 부회장을 만났다. J&파트너 설립과 이 부회장의 인맥 구축 방법, 현대제이콤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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