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등대
세검정의 유래 본문
세검정 (洗劍亭)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168번지 6호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4호)
세검정은 원래 연산군 때(1500~1505년경) 탕춘대(蕩春臺)를 마련하고 유흥을 위한 수각(水閣)으로 세웠다고도 하며, 일설에는 숙종 때 북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하여 병영 총융청(摠戎廳)을 건립하였는데 이곳에 있는 군인들의 휴게시설로 세웠다고도 한다. 그 후 영조 24년(1748) 중건하였으며 이 때 세검정 현판을 달았다. 광해군 15년(1623) 인조가 이귀(李貴), 김류(金濫) 등과 함께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성공한 후 이 정자 아래로 흐르는 홍제천(모래내) 맑은 물에 칼을 씻었으므로 세검정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세검(洗劍)'이라 함은 칼을 씻어 칼집에 넣고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세검정'은 인조반정을 의거로 평가하여 이를 찬미하는 상징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941년 부근에 있던 종이공장의 화재로 소실되어 기다란 주춧돌 하나만 남아있던 것을 1977년 5월에 복원한 것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세검정도(洗劍亭圖)>를 보면, 정자의 받침 돌기둥이 높직한 누각 형식의 건물로 도로 쪽을 향하는 면에는 나지막한 담장을 돌리고 입구에 일각문을 두었으며 건물의 측면으로는 편문(便門)을 두어 개울로 내려갈 수 있도록 묘사되어 있으나 현재 이런 시설물은 없다. 현재는 다른 정자와 달리 'ㄱ'자 모양의 육각정자로 되어 있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란". 그 실제 취지와 관계 없이 만고불변으로 통하는 진리다. 이제 일각에서 광해군에 대한 재조명을 하고 있는 마당에, 그렇다면 당연히 인조반정의 성격 등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곳이 역사 학설을 검증하고 논하는 자리가 아닌 만큼 더 이상의 불필요한 언급은 생략하도록 하자. 대신, 조경이란 관점에서 부언하고자 하는 부분은 있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산수가 수려한 곳에 정자나 누각을 지어 즐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누정(樓亭)은, 성격상 산수가 수려한 곳으로 찾아가다 보니 한적하고 외진 곳에 놓이기 마련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누정은 많은 야사와 밀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세검정의 경우도, 그 자연 경관의 수려함을 뒤로 한 채(사실, 지금은 평창동 한 복판에 자리잡아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도 못하다) 인조반정의 모사가 이루어진 장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세워진 본래 의도와 관계 없이 역사나 전설의 무대가 된 누정들을 찾아 뒷 얘기를 알아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다.
마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이건 나름대로 제법 심각한 이야기인데, 위의 언급을 보면 1941년 화재로 소실된 후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래와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복원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다면 모를까 분명하게도 겸재 정선의 그림이 있었음에도 그렇다! 이것은 아무리 1977년 무식한 군발이 정권 때 있었던 일이라고 애써 자위하더라도 이해되기 힘든 일이다. 그 후에라도 얼마든지 재복원 작업을 했으면 될 일 아닌가? 문화재를 복원할 때, 무엇보다도 복원할 가치가 있는 지 없는 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복원 쪽으로 결정이 났다면, 그야말로 제대로 할 일이다. 안내판에나마 '원래와 다르게 만들었다'고 명시를 해 놓은 것을 두고,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생각을 해야하는 건 지, 아니면 그나마 최후의 양심으로 기록이나마 남겨두었다고 봐야 하는 건 지 알 길이 없다. 얼마 전 특강차 한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제노바 대학의 Francesca Mazzino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명확한 사실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아예 복원을 않고 존치해 둔다고 한다. 보다 후대에 새로운 자료나 또는 새로운 복원 기술이 나올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이란다. 그토록 엄격하게 복원을 대하는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그 단계에 이르지 않더라도 최소한 있는 자료조차 팽개친 채 전혀 다른 건물을 세워놓고는 '복원' 딱지 붙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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